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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치 넘치는 원제, Outside of a Dog.

이 책이 독서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요 어구가 어떤 문장을 이끌고 올지 상상 가능하다. 그루초 막스의 독서명언으로 알려진 Outside of a dog, a book is man's best friend. Inside of a dog it's too dark to read. (개를 제외하고 책은 인간의 가장 좋은 친구다. 개에 푹 빠져 있으면 독서를 할 수 없다. Groucho Marx, 네이버 어학사전)

직역해서 제목을 붙였으면 ‘개를 제외하고’, ‘개 말고는’ 정도 되었을까, 그렇다면 코니 윌리스의 <개는 말할 것도 없고To Say Nothing of the Dog>와 헷갈렸겠다.


책에 관한 (번역)서적이 자주 그러하듯 이 책도 어느 정도 갈증을 남기는 것이, 우리말로 읽어볼 수 없는 작품들 때문이다. 짧은 리스트(번역출간해주세요;;)를 남기려고 한다. 근데 그 전에 잠깐.

다 읽고 나서 생기는 갈증에 더해 이 책은 심한 부러움까지 당당하게 남기고 마는데, 옥스퍼드(학생으로), 워릭(선생으로) 정도 다니니까 쓱 마주치는 사람만 해도 그 이름들이 참 화려하다는 것. 기억에 남은 몇 장면이다.


10대의 게코스키를 온통 사로잡고 있던 <호밀밭의 파수꾼> ‘홀든과의 동일시에 종말을 고하는 신호탄’이 되었던 무려, 앨런 긴즈버그.


나는 그 당시 워릭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긴즈버그의 낭송회가 바로 그곳에서 열렸다. 낭송회가 끝났을 때 여전히 감동에 사로잡혀 있던 나는 우연히 그와 나란히 서서 소변을 보게 되었다. 내가 그에게 빚진 것이 있음을 털어놓을 기회, 유일한 기회였다. 대체 어떻게 말해야 할까?

“고맙습니다.” 내가 말했다.

“천만에요.” 그가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74쪽)


긴즈버그가 26년생이니까 게코스키와는 한 20살 쯤 차이가 나려나, 같이 오줌을 누는 이런 영광이(?!) 다 있나.

워릭 대학에 임용된 후 학과장이 대학 구경을 시켜 주던 날의 만남은 정말 압권, 문단이 좀 길다.


우리가 복도로 나가 엘리베이터로 향했을 때 아주 놀라운 인물이 성큼성큼 우리 쪽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흡사 시대정신 자체의 힘으로 움직이기라도 하듯 자주색 스웨이드 바지 차림을 한, 대담한 균형미를 갖춘 여인이었다. 그 바지를 ‘가우초’라고 불렀던 것 같다. 우리를 향해 돌진하고 있는 그녀를 보자 남녀 양성의 매력이 뚜렷이 드러났다. 오목하고 강인한 턱, 높은 어깨, 교묘하게 헝클어진 검은 머리 타래, 튀어나온 엉덩이. 마치 튜턴족 신화에서 불가사의하게 빠져나온 인물이거나 젊은 시절 여장을 한 로버트 미첨 같았다.

헌터(학과장)가 사납게 다가오는 그녀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저메인.” 그녀의 무례해 보이는 태도를 은연중 나무라는 듯한 굳은 어조로 그가 말했다. “우리의 새 동료 릭 게코스키를 소개해도 되겠소?”

그녀가 우뚝 멈춰 섰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조증 환자와도 같은 강렬한 눈길로 쳐다보는 그녀를 보자 차라리 존 뉴턴(조금 더 전에 소개 받은 위압적인 다른 교수) 쪽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방금 바지에 똥을 쌌거든요.”

그 말에 대체 뭐라고 대꾸하겠는가? 그러고 나서 저메인은 빠른 걸음으로 가 버렸다. 나는 정말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인지 확인이라도 하듯 헌터를 쳐다보았다. 그는 보일락 말락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204~205쪽)


<거세된 여자>의 저메인 그리어인데, '여장을 한 (젊은 시절) 로버트 미첨'에서 빵 터졌다. 


 


가만히 보니... 예리한 안목이라고 해야겠구나. 그 강렬한 만남 이후로 그리어는 게코스키 부부와 좋은 친구가 된다. 옮겨놓고 보니 웬 똥오줌이 이렇게. 다음은 위생적으로도 아름다운 만남임.


그(존 베일리)의 말더듬은 옥스퍼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겉치레가 아니라 다음에 올 음절을 필사적으로 모색하기 위한 것으로서, 그의 말을 듣는 이는 그가 음절을 찾는 데 성공하거나 아니면 차라리 포기했으면 하고 기도하게 마련이었다. 그의 대화 상대는 인내심을 가져야 했다. 왜냐하면 자신이 지도하는 학생이 개별지도에 익숙해지면서 그도 어느 정도 안정을 찾게 되고 말더듬도 한결 나아지니까 말이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워릭 대학에서 그의 강연을 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때 나는 그의 아내인 아이리스 머독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남편이 더듬거리기 시작하자 걱정스럽다는 듯이 주먹을 꼭 쥐었다. “처음 몇 분만 지나면 괜찮아진답니다.” 그녀가 불안한 태도로 내 손을 꼭 잡고는 그렇게 말했는데, 실제로 그렇게 되었으나 그 순간이 오기까지가 끝없이 길게 느껴졌다. (223쪽)


<바다여, 바다여>의 아이리스 머독, <아이리스>의 존 베일리, 영화 <아이리스>로 유명한 그 부부 맞다. 저자는 논문지도교수의 휴가로 인해 1년간 베일리의 지도를 받았다. 자신의 지도교수보다 더 '재미가 있었'고 무척 온화한 사람이었다는 저자의 언급.







이런 환경 쩝, 나도 부러운데 영문학 전공자라면 얼마나 더할까. 그 부러움과 분함(?)을 폭발시켜 아름답게 번역해 주시기를 바라마지 않는 책들 되겠다 ;)


게코스키의 60년대 기억 속에서 언급되는 책들로, 헌터 톰슨Hunter S. Thompson의 <지옥의 천사들The Hell's Angels>, 

톰 울프Tom Wolfe의 <전기 쿨에이드 산성 실험The Electric Kool-Aid Acid Test>.


히피적인 캘리포니아에 대한 냉정한 기록물인 조앤 디디온의 <베들레헴으로의 배회>는 새로이 잠식하고 있는 삶의 형태에 대한 메일러의 열광을 진정시키는 유용한 해독제 역할을 했다. 그보다 덜 수사적이면서 훨씬 기백이 넘치는, 동일한 장소와 시대를 무대로 한 톰 울프의 취재물은 켄 키지와 그의 ‘즐거운 장난꾸러기들’ 무리에 초점을 맞추었다. ‘전기 쿨에이드 산성 실험’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책에 대한 소식을 처음 접한 것은 <뉴욕 타임스>지 1968년 8월호에서였는데, 거기에서 울프는 이 책의 바탕이 된, 이 작품을 쓸 때의 경험담을 풀어 놓았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무시무시했다. …… 저 ‘장난꾸러기들’ 모험에서 줄곧 느낀 것은 섬뜩할 정도의 4차원 세계였다. 원고 대부분을 단숨에 써 버려서 책이 나왔을 때 과연 어떤 모양이 될지 오늘까지도 감이 오지 않을 정도다.’


그리고 또 반가운 이름, 제프 다이어도 있다. 그가 늘 쓰고 싶어 했던 ‘로런스북’. 구글링해보니 일종의 전기인 모양, 로런스가 지냈던 장소들 (성지)순례도 포함하여 쓴다는 것에 관한 사색을 보여주는 책인 듯. 다이어의 로런스라니 정말 끌린다. <순전한 격정에 사로잡혀: D. H. 로런스와 씨름하기Out of Sheer Rage: Wrestling with D. H. Lawrence>


1년 후에 나는 다시 출판사 측에, 현재 인생과 사랑 모든 면에서 불행한 대학 강사가 D. H. 로런스에 관한 비평서를 쓰는 내용의 소설을 쓰고 있다는 편지를 보냈다. 그것은 로런스의 경험과 사상을 대학 강사의 삶과 관련짓는 소설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얼마 후에 그런 책이,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두 권씩이나 나왔다. 첫 번째 것은 버나드 맬러머드가 쓴 <뒤뱅의 삶>인데, 그 소설은 내 책이 나올 예정이었으나 나오지 못한 1979년에 출간되었다. 두 번째 1997년, 제프 다이어Geoff Dyer의 <순전한 격정에 사로잡혀: D. H. 로런스와 씨름하기Out of Sheer Rage: Wrestling with D. H. Lawrence>라는 멋진 제목의 멋진 책이었다. 결국 내 계획은 충분히 실행 가능했던 것이다. 단지 내가 그 계획에 부적절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나는 단 한 줄도 쓰지 못하고 말았다. (235쪽)


나는 여기서 처음 본 이름인데, 검색해보니 청소년 도서로 꽤 여러 권이 번역되어 있는 칼 하이어센Carl Hiaasen. <스캣!>은 당장 주문했다. 그러나 게코스키가 열정적으로 언급하는(그리고 심지어, '문학보다 낫다!'는 찬사를 받은) <이중의 불운Double Whammy>은 나와 있지 않다.'문학보다 나은' 게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내 판단이 맞았다. 그의 소설은 플로리다의 탈락한 주지사 후보로서 스킹크라는 이름으로 에버글레이즈에 은둔한 채 로드킬로 살아가고 있는 클린턴 타이리라는 애꾸눈 주인공이 등장하는 블랙코미디였다. 소설에는 괴짜에서부터 완전한 미치광이에 이르는 다양한 인물이 등장했다. <이중의 불운>은 남부 괴기소설의 전통을 따르고 있지만, 입안자와 개발자, 온갖 협잡꾼들이 얄팍한 돈벌이 수단으로 남플로리다 풍광을 모독한 데 대한 하이어센의 분노가 그 구상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경이롭고 놀라운 어조와 내용으로 가득한 그 작품 때문에 나는 움찔했으며 폭소를 터뜨렸고 정당한 분개에 동참하게 되었다. (322쪽)


토머스 해리스의 <양들의 침묵>에 꽂혀 범죄학을 전공하게 되는 딸 애나의 이야기가 이 책의 18장이다. 저자의 뿌듯함이 엿보이는 한편 애나의 책에도 무척 흥미가 간다. 브라이언 마스터즈Braian Masters, 애나 게코스키Anna Gekoski의 <기계적인 살인: 1950년 이후 영국의 연쇄살인범Murder By Numbers: British Serial Sex Killers Since 1950>. 이 책 이후 애나는 난데없이 '구두'(정말로, 발에 신는 그것) 쪽으로 관심을 돌렸다고 하니 같은 저자로부터 이런 류의 책 다시는 못 보게 될지도 모른다. 표지사진이 없군.


어떻게 이 일이 일어난 것일까? 대부분의 독자들은 <양들의 침묵>을 잊고 지나갔지만, 애나는 그 책에 매혹되고 그 책 때문에 변화했다. 예기치 못한 어떤 내적 씨앗이 발아한 것인데, 그 애 자신이나 우리가 그 과정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어 보였다. 클래리스 스탈링이 아니었다 해도 다른 누군가가 그 역할을 맡았을 것이다. 아니면 이것은 과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 놓이는 생각인데, 자신이 버려지고 학대받았다고 여기는 분노한 그 소녀가 만약 FBI의 여걸이나 희생자들이 아니라 살인자들과 자신을 동일시하기라도 했다면 어쩔 뻔했는가? 무의식적인 역할 모델이 클래리스 스탈링이 아니라 한니발 렉터였다면? (340쪽)


마지막으로는 아들 버티와 축구. 저자의 다른 책이다. <스테잉 업Staying Up>.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그리 솔깃하지 않았는데, 영국과 미국을 오가며 ‘영국스러움’과 ‘미국스러움’ 사이 분열을 겪고 있던 저자가 비로소 찾은 자신만의 음성으로 썼으며 꼭 축구 얘기가 아닌 일종의 ‘여행기’로 볼 수도 있다고 하니 읽어보고 싶어졌다.


<스테잉 업>을 읽은 한 친구는, 자신은 축구에 관심이 없지만 그 책을 보고 내가 버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알았다고 말했다. 축구 시합을 보러 다니는 일은 매주 함께했던 골프와 마찬가지로 부자간의 유대를 돈독하게 하는 통상적인 절차였지만, 나는 언제나 그 애한테 또 다른 유대감도 느꼈다. 버티는 내 아버지를 연상시켰고, 그 대신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그것은 버티의 분별력이 뛰어났기 때문만이 아니라, 애나가 태어난 직후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처럼 버티도 그 애가 태어난 직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우리 집안의 경우에는 유전적 교체가 무자비할 정도로 정확하게 들어맞는데, 버티의 귀여운 유아기는 아버지의 마지막 나날들과 연결돼 있다. (388~389쪽)



여기까지다. 끝으로 저자의 반짝이는 사랑의 한 장면을 옮겨 놓는다. 어느 화가의 전시회 오프닝에서의 일.


아는 사람도 없어서 몹시 지루해 하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내 발을 밟았다. 아주 매력적이고 쾌활하며 상냥해 보이는 한 여성이 돌아보고는 별로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죄송해요!”하고 말했다.

“괜찮습니다. 뭐, 한 번 더 밟으셔도 좋을 정도입니다.”

“막 담배를 피우러 나가려던 참이었어요.”

“그렇다면 저도 함께 가야겠군요.” (393쪽)


진정, 저 말 "괜찮습니다. 뭐, 한 번 더 밟으셔도 좋을 정도입니다."는 꼭 한 번 해보고 싶은 말이다. 전시회도 가야겠고 밟히기 좋은 신발도 찾아놓아야... 씁- 

책을 얘기한다는 건 결국 자기를 얘기한다는 것. 게코스키의 책들은 사랑으로 수렴되었다. 이 책에 꼼짝없이 기록된 내 새벽시간(축축한 봄비와 캔맥주), 이제 나를 얘기할 또 하나의 책이 더해진 거다.



Will you still need me, will you still feed me

When I'm sixty-four?

Every summer we can rent a cottage in the Isle of Wight If it's not too dear

We shall scrimp and save

Grandchildren on your knee

Vera, Chuck & Dave


비틀즈의 'When I'm 64', 게코스키의 64세 독서편력 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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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르-장국영-젊은 Scorsese (스콜세지, 스코세이지, 스코시즈... 바른 표기 절대 알 수 없음)

이런 연결이 가능해?

응, 그만큼 멋지고 현기증 나는 소설이라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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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로 남은 사랑. 작품의 행간과 터치를 더욱 풍성하게 하는 뒷이야기들. 모든 예술 작품의 뒤에는 가치와 품격을 높이거나 낮추는 사연들과 사람들과 역사와 소더비가 있다. 살아 있는 우리가 예술로 남은 그들을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되는 것이 그들의 영원한 삶이자 우리의 삶일 것이다.













두 책에서 모두 큰 비중으로 다루는 스티글리츠와 오키프는 차치하고 <사랑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가 제프 다이어의 <지속의 순간들>과 만나는 또 한 지점. 에드워드 웨스턴의 조수이자 모델 겸 연인이었다가 사진작가로, 혁명가로 또 디에고 리베라의 연인도 되는 바로 1920년대 중반의 멕시코, 티나 모도티(Tina Modotti)다. 


  


제프 다이어가 큰 줄기로 이끌고 가면서 우아하게 보여준 ‘모자로 할 수 있는 것’의 모도티 부분.


(…)비록 집단의 모자는 통일된 사람들의 표지이자 정치적인 힘을 모으는 표지이지만 말이다. 이를 가장 강렬하게 표현한 사진은 티나 모도티의 <노동자들의 가두 행진>(멕시코, 1926년)이다. 솜브레로들의 물결을 조감도로 바라본 이 사진은 가차 없이 전진하는 역사의 흐름을 보여준다. 그러나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며 북쪽 국경으로 향하는 이들의 연대 의식에 어린 희망은, 거대한 규모로 닥쳐온 대공황이 각각의 개인에게 비극을 하나씩 선사하면서 곧 사그라질 것이다. (지속의 순간들, 197~198쪽)


웨스턴과 왔다가 혼자 남은 그녀. 파란만장한 멕시코에서의 삶과 추방생활 등은 마거릿 훅스의 평전 몫으로 아껴 두자. 허풍쟁이에 뚱보, ‘개구리’, 바람둥이 리베라와 사랑과 예술을 나누면서 당시 리베라의 부인이던 루페 머린(역시 웨스턴의 모델이었다)의 분노를 사기도 했고 결국 리베라의 결혼 생활은 (또!) 끝나게 되며 모도티는 여러 운동가와 예술가들에 둘러싸여 활동한다.


집에서 꼼짝도 못하는 동안 그림을 그린 칼로는 아리아스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새 친구들을 사귀었다. 그녀는 모도티의 연인 훌리오 안토니오 멜라의 친구 헤르만 데 캄포와 가까워졌고, 드디어 밖에 돌아다닐 수 있게 되자 모도티의 살롱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1928년 내내 칼로는 모도티와 멜라, 데 캄포와 함께 바스콘셀로스의 선거운동에 참여했고, 정부로부터 대학의 자치를 지키자는 시위에 참가하기도 했다. (사랑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 347~375쪽)


 


모도티가 찍은 노동절 행진(1929년)의 리베라와 칼로, 영화 <프리다>에서 티나와 프리다, 리베라가 그린 벽화 <병기창>. 전투를 준비하는 프롤레타리아, 긴박해 보이는 와중 알고 보면 오른쪽에 모도티, 멜라, 비달리의 삼각 긴장(멜라를 쳐다보는 모도티, 그런 모도티를 살펴보는 바로 뒤의 비달리 얼굴) 뿐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리베라의 질투까지! 혁명과 사랑과 예술...이여.


(…)물론 예술가들 주변의 이야기를 자세히 살펴보지 않는 것은 태만한 처사일 것이다. 이 책의 이야기는 예술가들의 이야기일 뿐 아니라 아내의 외도를 눈감아준 휴고 길러와 프레드 안드레아스의 이야기이며, 준 맨스필드와 시몬 졸리베의 이야기다. 또 나탈리 소로킨과 올가 코사키에비치를 비롯해 예술가의 모임에 끌린 젊은 예술가 지망생과 모델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자신을 버릴 남자에게 매여 살았던 클라라 베스트호프와 안젤리나 벨로프 그리고 이 예술가들의 관계가 사회적으로 유해하다고 믿었던 말비다 폰 마이젠부크와 엘리자베트 니체, 보부아르의 가족 이야기도 빠뜨려서는 안 된다. 정말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알고 싶다면 그들을 격려해준 사람들, 그들의 작품을 출판하고 읽고 수집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반대하고 반항심과 의지를 자극한 사람들로부터 그들이 받은 수많은 도움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결국에는 현대 문명 전체를 논해야 하며, 결혼과 종교, 예술, 시장과 신기술, 산업과 대중매체, 문화에 관한 거대한 담론 속에서 이 예술가들의 대담한 관계는 사소한 개인적 예로 축소될 것이다. (사랑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 543~544쪽)


그리고 너무 일찍 세상을 뜬 티나 모도티의 이야기이기도 한 것.

 


p.s. <사랑은...>에서 연도표기가 잘못된 부분 두 곳이 내 눈에도 보였는데... 책읽는수요일, 숫자에 약한?

219쪽. 1995년에 오키프는 편지를 써 보낼 수 없는 사람(1986년에 영면하심).

528쪽. 닌의 <근친상간> 출간은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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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선물은 무례하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받을 사람이 지정한 책이 아닐 경우, 대개는 자신의 허영심을 보여주거나 상대의 취향을 무시하는 처사가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상대의 독서취향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든지(‘내 취향이야’ 즐겨찾기 서재 중에도 뜬금없는 넘버가 가끔씩 출현하지 않던가) 아니면 상대가 나의 선택과 취향을 기꺼이 따라 읽는 경우가 아니라면 바로 짐이 되거나 읽고 나서 수틀린다. 

알라딘의 기능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새삼 생각해보니) ‘주문하기’ 다음에 뜨는 “확인해 주세요. 이전에 구매하셨던 상품(들)입니다.”이다. 책 선물을 하지 않기 때문에 물론 아주 드물게 만나는 사랑스런 문장인데, 문제의 책이 바로 <새벽 세 시>.


정치색 없지(물론 미세하게 따져가며 성정치적 토론을 할 수도 있겠지만), 종교색 없지, 완결편이 분권으로 나와 있지(2권을 읽을 자유 혹은 권리까지 부여하는 셈), 무겁지 않지, 분량에 후달리지 않지, 약간은 간질간질하지만 심하게 오골거리지 않지, 미소 짓게 하지.

방금 나는 실연한 후배 주소로 주문 단추를 누른 참인데, ‘이전에 구매하셨던’ 적을 생각해보니, 흠- 저 사람 ‘책 감수성’이 궁금, 내 책들과 어느 정도 겹칠까, 한 마디로! 관심 가는데, 친구 할 수 있을까? 했던 사람들의 목록이 나오네. 하하 그 중엔 아주 슬픈 얘기도 있지만.

내 얄팍한 독서기록 중에 다 살펴보고 읽지 않은 많고도 많은 책들과 더 많은 취향들과 날카로운 분석과 역사와 논리와 정치적 올바름과 인권감수성 다 감안...해서 난 이 책. 가벼운 마음(친한 후배)과 무거운 마음(관심 있어요) 모두 부담 없이 이 책, ‘이게 바로 나’라고는 할 수 없지만(‘내 인생의 책’ 처럼) 무례하지 않게 간 볼 수 있는 책. 책 좀 읽는데 소설은 별로라는 사람, 책을 봐요? 하는 사람, 책 어디서부터 읽어야 할지? 하는 사람, 읽을 시간이 없어요, 하는 사람, 와 읽었는데 너무 반가워요, 하는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책 취향이 궁금한 사람에게 가늠자로 적용할 수 있는, 새벽 세 시.

몇 번 선물로 주문하고 직접 사기도 하고 급해서 책꽂이에 있던 책까지 줘버려 정작 내 손에 남아 있지 않은, 언젠가는 반값으로 판매하던, 이런 술집의 토닉 워터('무례하지 않은'의 비유가 고작-_-) 같은 책이 다 있나.

그나저나 실연한 후배(토닥토닥-)의 책 취향은 과연?

봄 햇살에 다시 한번 펴보고 싶은데, 두 번 읽어보지도 못했는데... 자꾸 애꿎은 <일곱 번째 파도>가 꽂혀 있는 쪽으로 눈길을 보내다가 몇 번이나 ‘참, 여기 없지.’한다. 곧 다시 만날 것 같은 배려 가득한 문장이로구나, 봄이라서. “확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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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10-25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후배는 지금쯤 이 책을 다 읽었나요? 후배의 책 취향은 어떻든가요?

에르고숨 2013-10-25 21:21   좋아요 0 | URL
후배도 이 책을 좋아한 것 같은데 문제는 놈의 간질간질한 문자가 제! 취향이 아니어서 혼난 기억입니다. '선배, 혹시라도 그동안 불행한 날들을 정기구독 하셨다면 마음 놓고 저에게-실수로-구독을 취소하십시오' (답문은 '시끄럽다') 며칠 후 마침 제 집에서 술자리가 있었는데, 어떻게 됐게요?


......책꽂이에 있던 <일곱 번째 파도>를 뽑 아 주 었 어 요 , 끝-

다락방 2013-10-25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 완전 좋아.............................요. ㅠㅠ

에르고숨 2013-10-25 21:18   좋아요 0 | URL
어이쿠, 잊고 있던 이 페이퍼에... 왜 이렇게 부끄럽지요;;? 고, 고맙습니다. 모든 알라디너가 그럴 텐데, 이제 <새벽 세시>는 다락방 님 책 같아요.
 

 

『페레이라가 주장하다』가 오늘 도착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감감무소식이다. 기다리면서 타부키를 추억해본다.


나는 타부키를 파리에서 만났다.

 

 

 

『인도 야상곡』. 자기 자신을 뒤쫓는 이상야릇한 이야기(제2 외국어로 읽어 그 꿈같은 느낌이 더 강했을 것)에 홀딱 반하고 말았는데 글쎄,

인간 타부키(베를루스코니에 날선 비판, 포르투갈에 대한 사랑)까지 좋아하게 돼버렸다. 장난기가 묻어 있는 순수의 저 얼굴, 이태리어 억양이 실린 프랑스어를 구사할 때는 더 멋있다. 콧수염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데, 매끈한 편이 더 좋더라.

 

   

 

꽤 사서 보았는데, 기억이 가물가물, 다시 읽어야 할 프랑스어 번역본들이다. 이 중에서 『레퀴엠』은 타부키가 포르투갈어(다른 건 모두 이태리어)로 썼으며 그 프랑스어 역자 이름도 ‘페레이라’이더라는 작은 우연(아마도 아주 흔한 포르투갈 성), 그리고 내가 갖고 있는 『인도 야상곡』의 표지(데이빗 호크니의 정물화)와 영문판『중요하지 않은 작은 오해들』의 표지 그림이 같다는 작은 재밋거리도 있다. 마지막 책은『페레이라가 주장하다』의 불어판 중 하나, 리스본 냄새가 풀풀 나는 멋진 표지다.

 


타부키는 페소아를 파리에서 만났다.

 

  

 

(면대 면으로 만난 게 아니다. 타부키가 태어나기 8년 전에 (술쟁이)페소아는 고인이 됐다.)

『페르난두 페소아의 마지막 3일』(아래 사진)에서 타부키가 ‘20세기의 가장 아름다운 시’라고 얘기하는 바로 그 ‘알바루 데 캄포스’(페소아의 70여개 이명(異名) 중 하나)의「담배 가게」, 프랑스어 번역본으로 이루어진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타부키는 그 후 포르투갈 문학에 투신, 페소아의 모든 작품을 이태리어로 옮겼으며 리스본주재 이태리 문화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특히 이 책은 페소아를 그린 훌리오 포마르의 데생들을 함께 싣고 있어 더 아름답다. 90쪽도 안 되는 작은 책으로, 페소아의 이명(異名) 작가들이 차례로 등장하여 병원 침상에 있는 페소아와 대화를 나눈다. 타부키가 자기 인생의 작가 마지막 3일을 소설적 전기(상상적 전기) 형식으로 쓴 작품이라 내겐 이중으로 소중하다. 이 책에서 타부키가 전하는 페소아의 마지막 말은 “내 안경을 좀 주시겠습니까.”인데 그 문단 전체가 어찌나 아름다운지 읽을 때마다 가슴이 저리다.

 

 

 

타부키가 쓴  페소아에 관한 에세이로는 『사람들로 가득한 여행가방』이 있다. 이 제목의 문장 역시 『페르난두 페소아의 마지막 3일』에서 언급되었던 말이다. 물론 페소아 안의 그 수많은 이명(異名) 작가들을 말함이렷다. 실제로 페소아 사후에 이명으로 된 수많은 작품들이 여행용 트렁크 속에서 발견된 사실. 이태리어본 표지가 아주 마음에 든다. 페소아와 타부키 각자의 작품이 많이 번역되어 있지 않은 시점에서 이 책까지 바라기는 아직 무리일 듯.

 

 

타부키의 페소아, 아니 더 정확히는 페소아를 좇는 타부키를 좇아 리스본으로 간 기억, 윗줄의 사진 세 장은 한때 타부키가 살기도 했고,『다마세누 몬테이루의 사라진 머리』에 그 이름을 준 ‘다마세누 몬테이루 길’(이라기보단, 길 '이름표'를 찍느라 사진꼬라지가 저렇다)이다. 정작 그 길(벽이 아니라) 사진은 어디에 섞여 들어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음식 냄새(주로 튀긴 생선)가 바람에 솔솔 날리던 골목들, 그 끝에 갑자기! 보이는 큰 물, 밤의 술집들, 검은 옷의 파두, 테주 강, 선창... 리스본은 어느 도시보다 흑백 사진이 잘 받는 곳이다. 그리고 반복되는 내 꿈 중에 가장 좋아하는 장면 또한 (아마)리스본인데, 미로 같은 골목길들을 막 헤매다가 뜬금없이, 불쑥, 사고처럼, 바다에 가 닿는 스토리다. 생각해보니 이 꿈의 느낌과 닮아 있는 책들을 내가 참 좋아하는 모양이다.

 

 

태어난 이태리도 아니고 운명의 작가를 만난 프랑스도 아니고 바로 여기,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잠드셨다.

(1943. 9. 24~2012. 3. 25) 고인의 명복을 빈다.


 

p.s. 책을 받고 보니 작가 연보에 실린 작품제목들이 내 것과 많이 다르다. 수정하지 않고 그냥 둔다, 출간되어 확정 제목이 되면 그때 고쳐도 되리라. 

 

p.p.s. 우리말 제목에 관한 생각, 이태리어로 읽으면 그 느낌이 어떨지, 아마 프랑스어와 비슷하지 않을까하는데, ‘주장하다’는 너무 거칠고 강하다. 작가의 말에서 볼 수 있는 의도(누군가가 말해 준 것을 전달하는 입장으로서의 저자)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라도 ‘페레이라에 의하면’, ‘페레이라가 말하기를’이 더 낫지 싶다. 반복하여 나오는 ‘prétend-il’의 뉘앙스가 보통 그렇다. ‘(내 의견과 상관 없이, 내가 믿지 않더라도) 그의 말에 의하면, 그의 말로는 ~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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