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남은 사랑. 작품의 행간과 터치를 더욱 풍성하게 하는 뒷이야기들. 모든 예술 작품의 뒤에는 가치와 품격을 높이거나 낮추는 사연들과 사람들과 역사와 소더비가 있다. 살아 있는 우리가 예술로 남은 그들을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되는 것이 그들의 영원한 삶이자 우리의 삶일 것이다.













두 책에서 모두 큰 비중으로 다루는 스티글리츠와 오키프는 차치하고 <사랑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가 제프 다이어의 <지속의 순간들>과 만나는 또 한 지점. 에드워드 웨스턴의 조수이자 모델 겸 연인이었다가 사진작가로, 혁명가로 또 디에고 리베라의 연인도 되는 바로 1920년대 중반의 멕시코, 티나 모도티(Tina Modotti)다. 


  


제프 다이어가 큰 줄기로 이끌고 가면서 우아하게 보여준 ‘모자로 할 수 있는 것’의 모도티 부분.


(…)비록 집단의 모자는 통일된 사람들의 표지이자 정치적인 힘을 모으는 표지이지만 말이다. 이를 가장 강렬하게 표현한 사진은 티나 모도티의 <노동자들의 가두 행진>(멕시코, 1926년)이다. 솜브레로들의 물결을 조감도로 바라본 이 사진은 가차 없이 전진하는 역사의 흐름을 보여준다. 그러나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며 북쪽 국경으로 향하는 이들의 연대 의식에 어린 희망은, 거대한 규모로 닥쳐온 대공황이 각각의 개인에게 비극을 하나씩 선사하면서 곧 사그라질 것이다. (지속의 순간들, 197~198쪽)


웨스턴과 왔다가 혼자 남은 그녀. 파란만장한 멕시코에서의 삶과 추방생활 등은 마거릿 훅스의 평전 몫으로 아껴 두자. 허풍쟁이에 뚱보, ‘개구리’, 바람둥이 리베라와 사랑과 예술을 나누면서 당시 리베라의 부인이던 루페 머린(역시 웨스턴의 모델이었다)의 분노를 사기도 했고 결국 리베라의 결혼 생활은 (또!) 끝나게 되며 모도티는 여러 운동가와 예술가들에 둘러싸여 활동한다.


집에서 꼼짝도 못하는 동안 그림을 그린 칼로는 아리아스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새 친구들을 사귀었다. 그녀는 모도티의 연인 훌리오 안토니오 멜라의 친구 헤르만 데 캄포와 가까워졌고, 드디어 밖에 돌아다닐 수 있게 되자 모도티의 살롱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1928년 내내 칼로는 모도티와 멜라, 데 캄포와 함께 바스콘셀로스의 선거운동에 참여했고, 정부로부터 대학의 자치를 지키자는 시위에 참가하기도 했다. (사랑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 347~375쪽)


 


모도티가 찍은 노동절 행진(1929년)의 리베라와 칼로, 영화 <프리다>에서 티나와 프리다, 리베라가 그린 벽화 <병기창>. 전투를 준비하는 프롤레타리아, 긴박해 보이는 와중 알고 보면 오른쪽에 모도티, 멜라, 비달리의 삼각 긴장(멜라를 쳐다보는 모도티, 그런 모도티를 살펴보는 바로 뒤의 비달리 얼굴) 뿐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리베라의 질투까지! 혁명과 사랑과 예술...이여.


(…)물론 예술가들 주변의 이야기를 자세히 살펴보지 않는 것은 태만한 처사일 것이다. 이 책의 이야기는 예술가들의 이야기일 뿐 아니라 아내의 외도를 눈감아준 휴고 길러와 프레드 안드레아스의 이야기이며, 준 맨스필드와 시몬 졸리베의 이야기다. 또 나탈리 소로킨과 올가 코사키에비치를 비롯해 예술가의 모임에 끌린 젊은 예술가 지망생과 모델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자신을 버릴 남자에게 매여 살았던 클라라 베스트호프와 안젤리나 벨로프 그리고 이 예술가들의 관계가 사회적으로 유해하다고 믿었던 말비다 폰 마이젠부크와 엘리자베트 니체, 보부아르의 가족 이야기도 빠뜨려서는 안 된다. 정말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알고 싶다면 그들을 격려해준 사람들, 그들의 작품을 출판하고 읽고 수집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반대하고 반항심과 의지를 자극한 사람들로부터 그들이 받은 수많은 도움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결국에는 현대 문명 전체를 논해야 하며, 결혼과 종교, 예술, 시장과 신기술, 산업과 대중매체, 문화에 관한 거대한 담론 속에서 이 예술가들의 대담한 관계는 사소한 개인적 예로 축소될 것이다. (사랑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 543~544쪽)


그리고 너무 일찍 세상을 뜬 티나 모도티의 이야기이기도 한 것.

 


p.s. <사랑은...>에서 연도표기가 잘못된 부분 두 곳이 내 눈에도 보였는데... 책읽는수요일, 숫자에 약한?

219쪽. 1995년에 오키프는 편지를 써 보낼 수 없는 사람(1986년에 영면하심).

528쪽. 닌의 <근친상간> 출간은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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