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선물은 무례하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받을 사람이 지정한 책이 아닐 경우, 대개는 자신의 허영심을 보여주거나 상대의 취향을 무시하는 처사가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상대의 독서취향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든지(‘내 취향이야’ 즐겨찾기 서재 중에도 뜬금없는 넘버가 가끔씩 출현하지 않던가) 아니면 상대가 나의 선택과 취향을 기꺼이 따라 읽는 경우가 아니라면 바로 짐이 되거나 읽고 나서 수틀린다.
알라딘의 기능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새삼 생각해보니) ‘주문하기’ 다음에 뜨는 “확인해 주세요. 이전에 구매하셨던 상품(들)입니다.”이다. 책 선물을 하지 않기 때문에 물론 아주 드물게 만나는 사랑스런 문장인데, 문제의 책이 바로 <새벽 세 시>.
정치색 없지(물론 미세하게 따져가며 성정치적 토론을 할 수도 있겠지만), 종교색 없지, 완결편이 분권으로 나와 있지(2권을 읽을 자유 혹은 권리까지 부여하는 셈), 무겁지 않지, 분량에 후달리지 않지, 약간은 간질간질하지만 심하게 오골거리지 않지, 미소 짓게 하지.
방금 나는 실연한 후배 주소로 주문 단추를 누른 참인데, ‘이전에 구매하셨던’ 적을 생각해보니, 흠- 저 사람 ‘책 감수성’이 궁금, 내 책들과 어느 정도 겹칠까, 한 마디로! 관심 가는데, 친구 할 수 있을까? 했던 사람들의 목록이 나오네. 하하 그 중엔 아주 슬픈 얘기도 있지만.
내 얄팍한 독서기록 중에 다 살펴보고 읽지 않은 많고도 많은 책들과 더 많은 취향들과 날카로운 분석과 역사와 논리와 정치적 올바름과 인권감수성 다 감안...해서 난 이 책. 가벼운 마음(친한 후배)과 무거운 마음(관심 있어요) 모두 부담 없이 이 책, ‘이게 바로 나’라고는 할 수 없지만(‘내 인생의 책’ 처럼) 무례하지 않게 간 볼 수 있는 책. 책 좀 읽는데 소설은 별로라는 사람, 책을 봐요? 하는 사람, 책 어디서부터 읽어야 할지? 하는 사람, 읽을 시간이 없어요, 하는 사람, 와 읽었는데 너무 반가워요, 하는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책 취향이 궁금한 사람에게 가늠자로 적용할 수 있는, 새벽 세 시.
몇 번 선물로 주문하고 직접 사기도 하고 급해서 책꽂이에 있던 책까지 줘버려 정작 내 손에 남아 있지 않은, 언젠가는 반값으로 판매하던, 이런 술집의 토닉 워터('무례하지 않은'의 비유가 고작-_-) 같은 책이 다 있나.
그나저나 실연한 후배(토닥토닥-)의 책 취향은 과연?
봄 햇살에 다시 한번 펴보고 싶은데, 두 번 읽어보지도 못했는데... 자꾸 애꿎은 <일곱 번째 파도>가 꽂혀 있는 쪽으로 눈길을 보내다가 몇 번이나 ‘참, 여기 없지.’한다. 곧 다시 만날 것 같은 배려 가득한 문장이로구나, 봄이라서. “확인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