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
이랑 지음 / 이야기장수 / 2026년 3월
평점 :
죽기 살기로 읽어야 한다고 해서 죽기 살기로 읽어볼 결심을 하고 펼쳤다. 제목과 띠지만 읽어도 고통스럽지만, 감당하고 있는 현실이 이미 만만치 않아서 기운이 없지만, 이렇게 내밀한 타인의 이야기를 읽어도 되나 싶기도 했지만, 주저할 모든 이유가 읽고 싶은 모든 이유도 되었다.
“끝없는 혼잣말이었던 소리가 언제부터 노래가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 시력은 더 약해졌는데 어쩐지 사람들이 더 잘 보인다. 눈치가 없고 타인에게 별 관심이 없어서 헤아림이 부족하던 나도 살아온 시간이 능력치가 되어 상대가 말하지 않은 생각과 기분을 짐작하게 만든다. 알려진 대로 이 초능력(?)은 대개 해당 소유자를 더 힘들고 불편하게 한다.
의식적으로 깊은 호흡을 해야 할 만큼 힘든 매일을 보내는 중이다. 2월, 3월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이 혼탁하다. 여전히 나는 안전하고 삶을 위협받지도 않지만, 돌봄 노동은 감정이든 아무리 결심해도 체력, 감정, 인내심을 순식간에 소진시킨다. 그래서 여러 감정들에 ”이미 정해진 간단한 이름들이 있다“는 문장이 오래 눈에 들어왔다.
“나는 일주일만 쉬라고 했는데, 왜인지 언니는 영원한 쉼을 선택했다.”
평생 친구가 될 수 없었던 어머니와 여동생이 있는 독자여서, 엄마와 자매의 이야기라면, 심장부터 덜컥거리지만, 일상이 힘드니 오히려 꼭꼭 씹어 넘길만하다. 도무지 의젓해지지 못한 미(未)어른 중년 독자로서, 체력도 감정도 최약체인 지금 이 이야기를 만나 참 다행이다.
멀쩡히 상례는 치렀지만, 그날로부터 아직 몇 걸음 멀어지지도 못한 채 다시 선친의 2주기를 맞아야 한다. 작가가 전하듯 어떤 이별은 영원히 소화될 수 없을 지도 모르겠다. 사는 일이 그러한 사별이 체증처럼 계속 쌓여갈 일이기도 해서 자꾸 정신이 아득하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은 계속 죽어 사라”지는 이 간절한 이야기가 예방주사처럼 아프고 의지가 된다.
“약함을 가지고 살아가는 방법을 탐구하는 인간이 (...) 살아나가는 두려움을 아는 인간이 (...) 살아갈 방법을 무언가에 의탁하지 않고 끊임없이 스스로 생각하려는 인간이 (...) 자신의 방법을 전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이 좋다.”
왜 한국에서는 출간하지 않으려 하셨는지 모르겠다. 어디서든 읽혀야하지만, 이 이야기는 한국에서도 많이 읽혀야한다. 당장 내 주위에도 이 책을 곱게 싸서 손에 꼭 쥐어주고 싶은 친구들이 적지 않다. 출간되어서 참 다행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