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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꾼도시여자의 주류 생활 - 미깡의 술 만화 백과
미깡 지음 / 이야기장수 / 2025년 9월
평점 :
“홉을 넣은 맥주가 돈이 된다는 걸 간파하자 (...) 맥주를 만드는 주체 또한 바뀌게 되었습니다. 처녀와 과부부터 업계에서 밀려난 거죠.”
지난주에는 기억나지 않을 만큼 오랜만에 과음(?)했다. 선친 일주기 제사라는 핑계도 있었다. 뇌세포가 얼마나 급격히 망가졌는지 사흘이나 멍했다. 그래봐야 한두 잔 마시던 것에 한두 잔 더 추가되었을 뿐이지만.
식욕이 시큰둥하니 삼시세끼가 저주 같다. 남이 뭐 먹는 지도 별 관심이 없어서 먹방도 술방도 안 보니, “술꾼도시 처녀들”도 못 봤다. 그래도 남이 해주는 음식은 대개가 맛있다고 느낀다. 노동은 역시 인간에게 해로움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에서 산 덕분에(?) 대학생이 되자마자 - 미성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주류를 접할 기회가 많았다. 좀 더 적극적이었다면 못할 경험이 없었을 것이다. 폭음이 급속 사교의 최적화란 믿음이 성행하던 시절이다.
“양조산업의 상업화와 기독교의 합동 공격으로 인해 에일와이프들은 점차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는 이야기.”
소주와 막걸리와 라거 맥주와 한국산 와인과 가짜 양주가 너무 맛이 없어서 다행이었을까. 뭐에도 잘 중독되는 성향이 아니기도 했다. 그러다 싱글 몰트 위스키와 코냑과 유럽 어딘가에서 만든 공정가 와인 등등을 알아간 건 영국 유학 시절이었다. 포만감이 싫으니 안주가 빈약한 한두 잔 술자리가 반가웠다.
의미 불명인 “위하여~”, “건배~”, “짠~” “파도타기” 등이 없는 조용한 시간도 좋았다. 워낙 흐리고 춥고 비가 오다 말다하고 해가 너무 빨리 지는 계절이 길어서, 알코올은 더 잘 어울렸다. 이불킥 에피소드들도 비로소(?) 생겼다.
“찬차만별이었던 보드카의 도수를 40도로 통일시킨 건 주기율표의 아버지 멘델레예프입니다.”
이 모든 이야기는 음복과 선친을 핑계로 홀짝 거린 술이 도와 쓰는... 그런 글이다. 만화라서 작가의 표정이 다정한 육성처럼 들리는 주정이기도 하다. 이런 술 좋아하고 들려줄 얘기가 마르지 않는 친구가 그립다는 투정이기도 하다,
알코올 때문만은 아니고, 덕분에 민망하게도 여러 번 크게 웃었다. 술분해를 전혀 못하는 선친이 만들어 주시던 그믐날의 칵테일이 그리웠다. 너는 마시라고 미리 사다 놓으신 맛있는 술을 즐기던 자리가 쓰렸다.
작가가 술 이야기 말고, 자꾸 너나없이 이러저러하게 힘들게 살아오는 이야기를 풀어서 별거 아닌 술에 빨리 취한다. 온 세상이 남성 화자로 시끄러워서 귀가 아플 때마다, #이야기장수 에서 계속계속 출간하는 여성 작가들을 떠올린다. 모든 술보다 더 강력한 위로다. #술만화에세이 참 좋네. #미깡최고 #김혼비작가님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