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프를 발음하는 법
수반캄 탐마봉사 지음, 이윤실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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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미국인 동기에게 들은 바로는 '위대한 미국과 그 나머지(We, the Great America and the rest of the world)'로 세계를 구분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교육 내용도 그런 것이 많다고 했다. 멋져 보이는 발명은 다 미국인이 한 거라는 수업을 실제로 듣고 컸다고.

 

이 작품의 분류가 기타 국가라서 문득 떠오른 기억.

 

해문클럽 첫 작품의 충격과 인상이 흐려지기 전에 만난, 반갑고 귀한 작품이다. 그들 기준으로 극동아시아far far east에 사는 주변인 독자라서 더욱 기대가 크다.



 

희망은 그녀에게 끔찍한 것이었다. 바라는 게 무엇이든 그것이 그 자리에 없다는 걸 뜻했으므로.”

 

14편은 짐작보다 많은 작품이다. 어디쯤에서 나는 구분과 주인공을 잊고, 누군가의 삶이 남긴 울고 싶은 쓸쓸한 기록을 확인하듯 페이지를 넘겼다. “거주 이동의 자유는 찬란한 권리로 들리지만, 선택의 자유는 종종 이후의 삶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 냉정한 브로커 같기도 하다.

 

표현하고 주장하고 설명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언어라서, 언어란 문화와 역사와 사회가 중첩된 습득물이라서, 낯선 언어 생활권이란 아주 많은 욕망의 좌절과 인정의 부재와 혼란과 소외와…… 무엇보다 차별을 의미한다.



 

묵음이 포함된 한 단어 - knife - 로 표제작에서 섬세하게 표현되는 삶은, 너무도 상징적이라서 서늘한 낙담을 느끼게 한다. 왜 수상작인지 설명이 불필요하다. 상황은 좀 다르지만, 공교육 시스템이 없던 시절 태어나 살아오신 분들 앞에서, 의식조차 못하고 영어 단어를 사용했던 순간들이 평생 부끄럽다.

 

해피엔딩으로 짜인 방식의 소설들이 아니라서, 14편의 작품은 모두 비극 대본 같기도 하고, 덕분에 나는 짧은 삶과 반드시 죽는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하며, 잠이 덜 깬 듯 흐린 오늘의 정신을 깨운다.

 

때때로 사람은 죽는다. 그 죽음에 반드시 이유가 있을 필요는 없다. 인생은 원래 그런 것이다.”

 

더 나은 삶이란 무엇인가. 무슨 노력을 얼마나 해야 하는 걸까. 사는 일은 왜 이토록 오래 아프고, 사랑은 왜 짧게 빛나고 마는 걸까. 덕분에 아름다운 사람들과 이야기가 갈증처럼 그리워진다. 낮에도 밤에도 꿈꾸듯 희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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