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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렇게 말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어 - 좋은 말, 나쁜 말, 이상한 말에 대한 고정관념을 뒤엎는 언어 이야기
발레리 프리들랜드 지음, 염지선 옮김 / 김영사 / 2025년 1월
평점 :
“나는 ‘모음vowels’에 관한 책을 썼는데 ‘장bowels’에 관한 책을 팔러 다니는 위장병 학자로 오해받는 일이 잦았다.”
표지와 제목을 보고 기대한 바는 완전한 오해였다. 자주 있는 일이라 당황은 하지 않았다. 다만, 언어학 책을 읽으며 이렇게 많이 웃을지는 몰랐다. 그러니까, ‘언어학’이 무엇인지도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던 셈이다.
“언어학자는 여러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이다. 언어학은 언어 사용자와 그들의 사회적 삶을 기반으로 한다.”
재미있지만, 구체적이고 학술적인 내용도 적지 않다. 많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많은 연구를 한 학자의 사고의 방식이 문장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영어를 원어로 쓰는 독자가 아니라서 모두 공감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수다도 못 즐기고 즐거운 언어생활도 구사하지 못한다. 업무상 전화를 받으면 상대방이 응답기인줄 알고 녹음알람을 기다린 적도 있다. 고백하자면 많은 경우 읽기와 쓰기가 말하기보다 편하고 덜 ‘시간낭비’라고 느낀다.
“사용하는 언어는 생각보다 훨씬 더 적나라하게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낸다. 말할 때 누구나 무의식적으로 언어를 변형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훈육되고 훈련받은 대로 업무 효율성과 능력주의, 결과주의, 정량 평가에도 익숙하다. 본보기가 되어준 많은 분들과 좋은 책들이 없었다면, 최악의 최악을 더한 인간 유형으로 살았을지 모른다.
“일반적으로 현대 언어가 점점 잘못된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 초등학교 때부터 세뇌받은 문법 교육에서 한 걸음 떨어져 생각할 필요가 있다.”
언어뿐만 아니라 ‘표현’된 많은 것들이 실은 “권력과 관점의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여전히 진실과 당위가 헷갈리고, “올바른” 것에 집착한다. 그 집착이 누군가의 “선호”라는 걸 안 후에도 재빨리 혼동을 정리하지 못한다.
“여전히 싫을 수는 이지만 최소한 그런 말을 쓰는 이유는 이해할 수 있길 바란다.”
그래서 이 책은 웃음과 함께 곱씹을 배움도 정확히 제시한다. 여전히 맞춤법 테스트를 자발적으로 하며 평생 배울 수 없을 문법에 목매는 나는, “그 올바름과 권위”에 대해 이렇게 다시 각성하고 배울 기회가 자주 필요하다.
“고쳐야 한다고 배워온 말버릇이 어쩌면 인류의 언어 유산으로 남을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각자가 다소 가진 ‘권력’이라는 계단 위에 선 자신을 제대로 보고, 새로운 세대의 발화 방식과 언어 수용의 말랑함과 발랄함을 평가하는 대신에, 살아있는 언어의 생장 방식이라고 보는 태도가 더 필요하다.
기초지식이 부족해서 깨달음도 적겠지만, 언어를 통해 내가 파악할 수 있는 내 정체성(을 이룬다고 생각하는 면면들)과 규범, 사회적 구별성에 대해, 현상이 아닌 권력의 척도로 재고해볼 수 있어서 고마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