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명하는 사랑
파올로 조르다노 지음, 한리나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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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증명하는 것은 무엇일까. 사랑을 증명하는 것을 무엇일까. 암울한 어느 시절이라도 멋진 책들이 쉼 없이 출간되는 기적, 덕분에 일상도 설레고 울울한 삶도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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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죽음의 역학과 실패한 삶 사이의 상관관계를 찾는 게 타당하다면, 과연 나 자신은 어떤 결말을 기다릴 수 있을까?”

 

읽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기분 좋은 무언가를 눈치 채고(혹은 오해하고) 더 즐겁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방정식의 해룰 구하는 과정, 혹은 법칙을 유도하는 과정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고차방정식이 어떤 조건 하에 있는지를 제시하듯, 탄생과 성장과 만남과 결합과 사랑과 관계와, 그러니까 삶과 사랑과 죽음과 그리고 플러스 알파()이 펼쳐진다. 일기 같고 에세이 같고 자전소설 같은, 담담하고 평온한 문체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장 강력하게 느끼는 변화는 무엇일까. 관계의 깨짐일까, 죽음일까, 혹은 사랑에 빠지는 일일까, 아니면 가족의 탄생일까. 방정식 풀이 과정에 동원되는 갖가지 수학적 기술technique처럼 사건들이 어우러진다.

 

다재다능한 천재 물리학자이자 작가이자 화자는 오래 깊이 관찰한 대상들을 법칙들의 데이터만이 아닌, ‘사람들의 콘텐츠로 능란하게 다룬다. 나는 이탈리아의 찬란한 햇살에 눈이 부신 것처럼 작품에 매료된다.

 

물리학자들은 많은 양의 정보를 다룰 줄 알고, 다재다능하며, 무엇보다 불평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사람들 말이 그렇다고 한다.”



 

개인으로서의 인간도 조직(가족 등 관계 속)된 인간들도, 우주의 존재하는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존재처럼 일순 고유한 성질과 형태를 지니고, 우주에 존재하는 힘에 이끌려 운행하고 사라지듯, 그런 삶을 산다.

 

물리학 뉘앙스가 가득하고 때론 노골적인 인용과 비유가 등장하지만, 엄격하고 정밀하고 건조해서 독자를 힘들게 하지 않는다. 물리학 전공자인 나로선 본래적 즐거움에 샷이 추가된 커피를 행복하게 마시는 느낌을 주는 소설이다.

 

아이러니하다, 아니, 가혹하다. (...) 어떤 수든 0을 곱하면 0이 되는 이유를 내 아들의 머릿속에 옮길 수가 없다.”

 

다 읽고 나니 무엇이 인간의(나의) 삶에서 가장 큰 사건인지가 재배열되는 기분이다. 이 순서는 또 바뀌고 때론 무의미해지기도 할 것이지만, 이 책의 마지막 문장에 도착해서 마주한 감정은 한참 기억될 것이다.

 

마침내 아이가 큰 소리로 증명해준 마지막 해답, A(____)이다. 군더더기도 허점도 설명되지 않은 채로 남겨진 것도 없이, 간결하고 아름다운 풀이과정이었다. 물리학(관련 내용들)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작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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