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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에 간 의사 - 영화관에서 찾은 의학의 색다른 발견
유수연 지음 / 믹스커피 / 2024년 9월
평점 :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는 일이 점점 더 쉽지 않은 일이 된다. 마지막이 7월이었던가. 더위도 힘들고 몸도 아프고. 8월과 9월은 더 큰 일들과 함께 녹아 사라지듯 시간이 흘렀다. 9월의 어느 밤 아이들이 골라 틀어준 넷플릭스 영화가 백만 년만인 듯해서 몹시 즐거웠다.
주말과 연휴에 영화를 한편 볼까 싶기도 했지만, 결국 영화를 보러간 의사의 이야기를 펼쳐 읽게 되었다. 타인의 눈으로 나도 본 영화를 다시 만나는 일은, 때론 낯설고 놀라운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한다. 신경과의사 저자라서 더 특수하게(?) 재밌다. 그런 장면이 있었지 하고 이제야 떠올려보는 스친 기억들.
<헤어진 결심>에서 주인공 남성의 불면증이 의학 질환명과 신화와 전설을 통해 새로운 양념을 입은 새로운 식재료로 버무려진다. 내용이 무시무시하다. 운디네에게 “깨어 있는 모든 호흡으로 변치 않는 사랑을 맹세한” 이는 “잠이 들면 호흡이 멈추”는 저주에 걸린다.

<가이언즈 오브 갤러시 Vol.3> 가디언즈 시리즈를 재밌게 보았다. 올드 팝의 매력이 컸다. 우주 최고로 야비한 창조주 - 하이 에볼루셔너리 - 는 오래 전 최애 SF 영화를 떠올리게 했다. 노골적인 이름처럼 진화를 지향하는 생체실험에 몰두하는 캐릭터다.

의사인 저자가 인류 역사에서 거리낌 없이 행해진 생체실험과 윤리의식없이 희생자들의 뇌를 실험재료로 삼은 의사들의 기록을 언급해주어 감사히 배웠다.* T4 작전. 제네바 선언 탄생의 기원이 되는 비극.
<듄>은 원작이 영상화되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고 반가웠지만, 얼마나 장수해야 영상 스토리의 완결을 만날 수 있을지 염려가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인류는 실수를 반복하고 미래란 상상 이상 퇴행된 상태일 수도 있다는 상당히 우울한 세계관이기도 하다.
저자는 작품의 세계관에 주목해서, 여러 문명과 문화에 대한 비유를 신화와 지리와 역사 속 이야기로 번역해서 들려준다. 세계 각국의 신화 읽기를 즐기지만 도무지 이름들을 외울 수 없는 나로서는, 이렇게 짚어주는 이야기가 아주 반갑다. 영화 <듄>의 속도감과는 다른 흥미로운 설명이 즐거웠다.
<매드맥스>는 여러모로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세계관과 액션과 연기와 메시지가 잔혹하고 매력적이다. 우울할 여유도 없이 절망적으로 망해버린 세상이지만, 그렇게 삭제된 단촐한 배경과 세계가 더욱 강렬한 느낌을 잘 전달한다. 저자 덕분에 감족 조지 밀러가 “정형 외과 의사”출신이라는 걸 알았다.
의사인 감상자가 찾아낸 의사 감독 느낌의 지점들을, 새 영화 보듯이 따라가며 읽었다. 물론 임신과 출산이 가장 중요한 갈등 발발의 소재이고, 이상적인 의사가 아닌 “생체기술자” 캐릭터가 의료인이 아닌 내게도 섬뜩했다. 저자가 알려준 “전신근간대경련”이란 의학명, 퓨리오사의 분노가 느껴지는 타격감이다.
<엘리시움>을 “멋진 의료 신세계”란 요약이 적확하다. 계급 격차와 차별을 시각적으로 최대한 선명하게 구현한 작품이라서 좋았다. 영화 엘리시움에서 그리스 신화와 파리의 샹젤리제 - 엘리시온 들판 - 로 이어지는 설명들이 흥미롭고 재밌다.
물론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역시 “만능 치료 기계”였다. 잠시 영화 스토리를 잊고 그 기계 안에 나도 들어가서 눕고 싶었다. 장수는 바라지 않지만 사는 동안 몸의 여기저기 통증은 좀 사라지면 좋겠다. 엘리시움 주민이면 집집마다 한 대씩 있는 게 너무 부러워서, 잔혹한 불평등 구조도 잠시 잊었다.
더 다양한 영화와 더 깊은 이야기들이 이어지면 좋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빨리 읽었다. 재미있어질 만하면 끝나는 분량이 아쉬웠다. ‘신화와 전설을 좋아하는 의료인이 본 영화’라는 구성이 충분히 흥미롭다. 기회가 되면 좀 더 깊고 긴 글들도 읽어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