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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우맨 ㅣ 암실문고
마틴 맥도나 지음, 서민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9월
평점 :
마틴 맥도나의 작품들을 좋아하고 암실문고 시리즈의 팬이다. <이니셰린의 밴시>는 아일랜드 바닷바람과 피 냄새가 아직 코끝에 맴도는 듯 생생하다. 베개(필로우)가 제목에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깰 수 없는 악몽처럼 무섭다. 분명 내가 짐작하는 것보다 더 쓰리고 잔혹할 것이다. 지치도록 슬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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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필로우맨은 이렇게 생겨야 했어, 부드럽고 안전해 보여야 했지, 그가 하는 일 때문에 말이야. 그가 하는 일은 아주 슬프고 아주 어려운 일이었거든…….”
필로우맨이 무섭지 않다. 그 존재의 용도가 측은하기만 하다. 괴물이라도 상상 속 친구를 만든 아이들의 처지에 나도 필로우맨처럼 “하루 종일 울면서 돌아나”닐 뻔 했다. 공포 속에 살다 고통 속에 혼자 죽는 것보다, 필로우맨이 함께 인 것이 차라리 다행인 것만 같아서.
“필로우맨이 자기 일에 성공하면, 어린 아이는 끔찍하게 죽어. (...) 성공하지 못하면, 어린아이는 끔찍한 삶을 살고, 자라서 어른이 되어서도 역시 끔찍한 삶을 살다가 나중에 끔찍하게 죽게 되지.”
마흔 전의 나는 이 작품에 더 많이 놀라고 경악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가족 내에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어떤 위해를 가하는지 나는 서늘한 통계로 만났다. 믿기 싫은 현실이, 그나마 10% 정도의 신고 자료에 근거해서 적나라하게 기록되어있었다. 누락된 90%의 처지를 상상하기가 두려웠다.
자신의 아이에게도 남의 아이에게도 빈번하게 못할 짓들을 하고 너무 많이 죽이는 엄마, 아빠, 어른들. 어둠 속에서 다른 결말을 상상하는 아이들의 간절한 기도 같은 시간, 카투리안에겐 “이야기들이 전부”였다. 결코 현실보다 잔혹할 수 없는 이야기들에 지금도 꼼짝 없이 그 잔혹함에 붙들린 이들을 생각한다.
부분 소리 내어 따라 읽는 것을 좋아하는 희곡을 숨을 죽이며 읽어내었다. 영상화되지 않은 글과 행간을 상상하며 강렬함에 숨을 삼켰다. 보이지 않은, 알려지지 않은, 보고되지 않은, 기록되지 않은 현실의 ‘행복하지 않은 결말’은 얼마나 많을까.
외면도 미화도 아닌, 마틴 맥도나의 밀도 높고 숨 가쁜 문장들, 끔찍하게 아름답도록 완성도 높은 서사가 미처 피할 수 없는 소나기처럼 힘차게 전해진다. 아파서 눈물이 나고 슬퍼서 울었다. 그럼에도 이 희곡이 영상이 된다면 나는 필히 보러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