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낙원
김상균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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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으로 치면 (...) 통상적인 살인과 완전히 다르지요. 당사자의 이해와 대립하지 않는, 그러니까 당사자의 이해를 위한 살인이죠.”

 

인지과학자가 쓰고 뇌과학자가 추천하는 미래 엿보기 소설, 낙원일까 반대일까 궁금해서 하나의 예상도를 만나보고 싶었다. 인간은 호기심을 자제할 수 없다. 지원만 있다면 악몽일지라도 결과를 보고 싶어할 것이다.

 

욕망으로 추동된 과학기술은 부작용을 제외하고 팔릴만한 부분만 절개되어 원래의 목적과 형태를 잃고 변질될 것이다. 늘 그랬듯 누군가는 이익을 얻고, 누군가는 적응해서 살아갈 것이고, 누군가는 피해를 입거나 접근 자체가 원천 배제될 것이다.



 

고통만 남은 시간을 선고 받는다면, 그 마지막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는 당사자의 선택이어야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당사자가 의사결정능력이 없거나 전달할 수 없는 상황일 수도 있다. 내가 가족이라면 혹할 제안이다. 마지막에 행복한 꿈을 꾸다 떠날 수 있다는 건.

 

하지만, 그 시나리오를 인공지능이 준비한다는 것에 인간으로서 발작적인 모욕감을 느낀다. 그러니까, 인간이 좋아할만한 내용들을 추려서 이러저러하게 짜 맞춘 시나리오라. 중년 꼰대라서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모욕적이다.



 

그래도 갈등은 사라지지 않는다. 진짜 고통이 좋은지, 아니면 가짜 행복이 좋은지 (...)” 최선은 아닐지라도 최악을 피하려는 거가 나쁜 것인지. 아버지는 고통 없이 떠나셨지만, 큰 고통 속에 계셨다면 이 작품을 읽는 동안 내 생각은 달랐을 지도 모르겠다.

 

냉혹한 현실 속에서 살다가, 삶의 끝에서 가짜 환상들로 가득 찬 놀이공원에 가서, 함께 생을 마감한다. 현실에서 환상을 통해 죽음으로 가는 구조.”

 

우려했던 오류가 계속 드러난다. 사연을 통해 서비스를 신청한 이들도 진실을 잘 모르고 오해한 경우가 많고,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여전히 기술을 오용하는 인간들이 있고, 치유의 목적에서 가장 먼 복수의 수단으로 프로그램이 거래되기도 한다.

 

기억을 조각하고, 고통을 조각하는 일로는 인간을 치유할 수 없다면, 고통 받는 인간에게는 무엇이 필요할까. 인간은 정말 나약해서 슬픔과 고통의 늪에서 구원해줄 기계가 반드시 필요한 걸까. 나도 언젠가 그런 구원을 원하게 될까.

 

인간은 엉망이고 발할라가 인간보다 더 합목적적인 선택을 한다. SF 문학과 영화에서 여러 번 마주한 장면이다. 인간으로서 부끄러움을 피할 수 없게 되는 지점이다. 물론 발할라의 선택은 규칙에 따른 것이고 인간이 판단하고 책임지는 것과는 다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공물들은 인간이 만든 것이다. 인간에게 닥치는 모든 상황은 인간으로부터 기인했다. 인간의 몫이다. 그러니 문제는 책임을 지는지 외면하는지의 문제이다. 당연하게도 그 선택이 모든 것을 바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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