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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운명 3 ㅣ 창비세계문학 100
바실리 그로스만 지음, 최선 옮김 / 창비 / 2024년 6월
평점 :
“무엇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나? 어떤 이의 의지가 역사의 운명을 결정했는가?”
제2차 세계대전은 한반도의 운명도 바꾸었다는 점에서, 작품 속 인물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남의 일 같지만은 않다. 약속이, 신념이, 철학이, 사상이, 조약이 변하고 깨지고 무시되고 소멸되는 시간의 흐름이 주춤거림이라고는 없는 무자비한 광풍과 같다.
‘선’을 현실화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전쟁은 바로 그 신념의 소유자들을 잡아 가둔다. 외부의 적과 싸워 이긴 후에도 전쟁은 멈추지 않는다. 전쟁은 하나가 아니며 애초에 그 끝을 누구에게도 약속하거나 보장하지 않았다. 상대를 달리하는 전쟁은 또다시 새로운 인간들의 삶과 운명을 부수고 짓밟는다.
“선생님은 삶이 곧 자유라고 하셨죠. (...) 온 우주에 흩어진 그 생명이 제 위력을 무생물의 노예 상태보다 더 무서운 속박의 건설에 쏟는다면 어떻게 되는 거죠? (...) 그 인간에게 현재 우리가 지닌 동물적 자기확신과 계급적, 인종적, 국가적 이기주의가 남아 있다면 (...) 그 인간은 결국 온 우주를 은하계 강제수용소로 변화시키지 않을까요?”
이성과 합리성과 절차적 정당성 모두를 무력화시키는 전쟁 중에 결백할 수 있는 이들은 매순간 권력을 잡은 이들, 승자들뿐이다. 이들은 자신이 승자인 동안에 수많은 죄인들을 양상해내고, 그 폭력의 방식으로 전체주의를 강화한다. 한때 삶을 살았던 이들이 이유도 없이 처형되고 기록도 없이 지워진다.
“운명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분명한 감각이 찌를 듯 선명하게 일어났고, 여기에 무언가 이상하게도 사랑스러운 것, 감동적인 것, 훌륭한 것을 상실하고 있다는 슬픔이 섞여들었다.”
인간에 대한 수많은 낙관주의가, 지식이, 이상이, 상상이 버려질 농담이 된다. 이는 한때 한반도에서도, 내 세대의 많은 친인들도 꿈꿨던 내용들이었으나, 비슷한 조롱을 받고 현실의 이익 앞에, 혹은 이익을 매개로 한 패거리 권력에 수없이 패배했다.
1945년 8워 15일, 일본이 항복을 시인한 것은 맞으나, 한반도가 광복을 만난 건지는 문득 의아하다. 그럼에도 국가가 경축하는 이 날의 의미는, 이 책에서 만난 잊히지 않는 메시지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개인을 찌그러뜨리는 속박을 이기는 자유(를 향한 추구), 살해와 학살을 서슴지 않는 가혹한 운명의 폭풍 속에서도 살아남아 이어지는 삶. 그리하여 잊히지 않고 사라지지 않고 전해온 가치들. 그 이름들을 기억하는 한 그만큼 희망의 바람은 불어온다. 인간은 그렇게 인간으로 남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