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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사의 두건 ㅣ 캐드펠 수사 시리즈 3
엘리스 피터스 지음, 현준만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평점 :
“한창 일할 나이에 세상을 버리고 유산은 전부 수도원에 기탁한 채 자기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음식과 의복과 연료 따위를 지급받으며 은거하겠다는 그자는 도대체 어떤 인물일까?”
3권을 아주 재밌게 읽었다. 영국 고전 추리 소설에 단골로 등장하는 독살의 재료도 반갑고(?), 가족과 법령에 관련된 내용도 흥미롭다. 조용하지만 세게 비트는 영국식 시선도 별미다. 익숙해질수록 더 재밌는 시리즈다. 즐겁다.
“수도사의 두건이라고 불리는 투구꽃의 덩이뿌리를 겨자기름과 아마기름에 섞은 겁니다. 독성이 강해 조금만 삼켜도 목숨이 위태롭습니다.”
어느 조직이나 권력 다툼은 항존하고, 어느 가족이나 복잡하고 곤란한 사연이 있다. 인간사의 다사다난이 대개 거기에서 출발한다. 이 작품의 독특함과 사랑스러움은 기괴함이 아닌 일상 범죄의 구성요건과, 그 사건을 대하는 캐드펠의 상당히 급진적인(!) 입장이다.
“원한과 증오에 가득 차 고통스러워하는 저 젊은이는 어떻게 할 것인가?”
전작에서 진실에 대한 입장을 드러내는 부분도 그러했지만, 이번 작품의 결말은 복잡한 과감성을 보인다. 나는 고요히 큰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병마로 혼몽한 정신을 추슬러, 내가 읽은 결말이 정말 그 결말인지 거듭 읽어보았다.
인간의 형편에 대한 이해가 깊고 때론 이상적으로 너그러운듯하면서도 법으로 가하는 처벌보다 더 철저한 속죄를 요구하는 캐드펠의 결론은, 약간의 종교적 색채에 더 많은 영국스러움을 더한 태도로 보인다.
“만일 법이 절대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는 확신만 있다면 (...) 그러나 그에게는 그런 믿음이 없었다. 재판에는 반드시 죄인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실제로 시민이 단결(?)해서 정부나 조직과 시스템을 골탕 먹이고 속이는 일을 좋아하는 영국인들을 적지 않게 보았다. 어떤 문장들에서는 실용주의적이고 공리주의적인 철학적 사유도 비친다. 도덕과 원칙의 문제에 있어 내게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지점이자, 납득이 안 되는 것도 아닌.
“자네가 행한 선의 총계가 악행을 모두 합친 것보다 수천 갑절이 되도록 노력하게나.”
3권을 읽는 동안에는 따로 메모가 필요 없었다. 드디어 나도 이 작품 세계에 제대로 도착한 느낌이다. 아직 두 권이 더 남아 즐거운 여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