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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로 만든 세상 - 은행개혁과 금융의 제자리 찾기
신보성 지음 / 이콘 / 2024년 6월
평점 :
“은행제도는 한마디로 실패한 제도다. (...) 한결같이 그 끝은 파산으로 귀결되었다. (...) 오죽하면 은행파산을 뜻하는 bankruptcy란 단어가 파산 전체를 아우르는 용어로 쓰이고 있겠는가.”
평생 읽은 책 중에 가장 낯선 책이다. 금융에 대해 아는 바도 없고 공부해본 적도 없다. 그래서 무척 재미있었다. 책의 구성이 좋다. 핵심 질문을 하면서도, 금융 관련 기본 지식도 제공한다. 은행의 역사, 현대 은행 이론, 은행 위기, 은행 규제 등의 내용들을 덕분에 배웠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깨닫기 시작했다. 금장의 금고에서 주화를 넣었다 뺐다 하는 대신 보관증을 주고받는 것이 훨씬 편리하다는 것을 말이다.”
은행의 역사는 여타의 다른 역사서와 같이 흥미롭다. 은행 이론은 좀 더 낯설지만, 저자가 주류적 시각과 달리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지를 구분하기에 유용한 배경 지식이다.
“은행이 예금으로 받은 돈을 대출한다는 생각은 은행제도를 잘못 이해하는 것misconception이다. (...) 대부분의 대출은 예금 유입 없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점에서 은행을 (...) 신용창출기관credit creation institution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어느 분야라도 개혁은 어려운 일이고 저항은 거세다. 금융과 은행제도의 개혁이란 인류 문명의 최강자들에 맞서는 일이다. 저자는 “은행산업”만 자신의 경쟁력이 아닌 지원에 힙입어 생존하는 ‘특권’에 대해 질문하고, “은행이 특별하다”는 허구적 신화를 밝히고자 한다.
은행의 수가 급증하고, 신용팽창과 자산버블이 절정에 달하면 결말은 극심한 불황이다. 10년 주기로 반복된 은행 위기가 대공황이 역사에 기록되어있다. 개혁의 대상이나 처벌과 변화 대신 안전망을 선물 받은 금융권의 위기는 감당하기 힘든 수준에 이른다.
“세계 경제는 이미 부채의존경제 한가운데 진입해 있다.”
저자는 금융 부문의 착시risk illusion이 무엇인지, 금융이 어떻게 실물경제를 갉아먹고 있었는지를 상세히 설명한다. 더 큰 문제는 부채 양산을 통해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생존과 직결된 기후문제의 근저에 현대 은행제도가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적 양극화는 사회정치적 양극화를 부추기고, 과도한 탄소 배출은 과도한 생산 활동과 과잉소비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야기하는 것이 과잉금융이다. 즉, 현대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잉금융의 폐해를 알아야한다. 저자는 이 해결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다른 문제의 해결은 영여 불가능하다고 본다.
“과잉금융은 인류의 존속까지도 위태롭게 한다. (...) 인류의 삶에 기여하지 못하는 생산 활동으로 환경파괴가 심화되고, 이에 따른 기후변화는 점차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