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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게 될 것
최진영 지음 / 안온북스 / 2024년 6월
평점 :
‘써야 한다’고 생각한 것들을 ‘쓰게 될 것’이라고 하셨을까. 늘 작가 이름만으로 반갑게 읽게 되지만 매번 픽션을 논픽션으로 읽게 될 만큼, 똑바로 봐야 할 것들을 봐주는 법 없이 담는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고, 그래서 기대가 더 크다. 여덟 편!
반한 상대에게 다시 반하는 일은 책을 읽으면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홀려들 만반의 준비가 된 마음 상태였을 지도 모르지만, 인간이 낯선 것을 갈망하는 피상적인 존재라는 걸 감안하면, 경애는 언제든 실망이 되기도 하는 법이다.
표제작의 첫 장을 펼치고 다음 장까지 내리 울먹이며 읽었다. 먼저 읽은 친구가 오랜만에 퍽퍽한 일상에 심금이 울렸다고 했는데, 나도 울려대는 심금에 울면서, 이래서 어떻게 다 읽고 뭘 쓸 수 있을까, 와중에 그런 고민을 떠올랐다.
“엄마, 나는 너무 외로워. 아무리 울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내게 필요한 것들을 하나도 손해 보지 않는 정도로만 타인의 비극에 공감하고 애통해하고 간단한 후원으로 마무리하는 행위들의 기억 저편에 아직 멈추지 못한 전쟁이 있다. 그 사이에 전쟁이라 부르는 학살은 더 늘었다. 선언도 공표도 비난도 받지 않는 다른 전쟁들도 각국에서 인간을 망가뜨리고 죽이고 있다. 나는 최선을 다해 외면하며 생존을 도모하고 살았다.
“엄마는, 전쟁을 세 번이나 겪고도 신을 믿는 할머니를 이해하지 못했다. 할머니는, 전쟁을 두 번이나 겪고도 내세를 믿지 않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다.”
문자로 펼쳐지고 문장으로 재구성된, 인류 최악의 발명인 전쟁은, 유려해서 더욱 두려운 진술 같다. [쓰게 될 것]은 고작 2022년에 발발했던, 고작 기억하는 게 버거워 벌써 잊고 싶었던 시간을 세세하게 들추어낸다.
“신을 믿는 자들은 전쟁을 구원이라고 했다. 더 많은 살상이 승리이자 착한 행실이라고 주장했다.”
첫 작품에 기진한 건 맞지만, 다른 작품들도 궁금해서 매일 한편씩 다 읽었다. 표제작만큼 휘둘리진 않았지만, ‘ㅊㅅㄹ’이란 자음을 보면서 ‘그 단어’를 떠올리지 못한 나를 심각하게 고찰했고, 기성세대라서 탄소 문제를 언급하는 작품을 만나 또 부끄러웠고, 지금의 문명이 망하는 날이 오면, “역사 수업에서 배운 것을 다 경험”한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지혜에 매달려 생존하게 되는 건가, 갈수록 커질 재난에서 탈출할 방법을 잘못된 지혜로 해결하려고 헛된 노력을 하는 건가, 앞날이 더 아찔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인간의 쓸모]를 묻는 작품에 또 사로잡혀서, 복잡한 질문들에 허덕이며 즐겁고도 괴로웠다. 셰어런팅*에 대한 반감과 우려는 오래 전부터 있었던지라, ‘써야할 것들’을 써주는 작가에게 새삼 정신을 조아려 감사를 올렸다.
* Sharenting: share + parenting. 자녀의 일상을 SNS에 올리는 행위.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이 만든 말.
챗봇이 뭐든 다 대답해주는 세상에서, 학교는 혐오 시설이 되고, 다수가 믿는 건 거짓도 진실이 된다. 지불가능하다면 유전자 가위질이 당연한 세상에서, 미래 성장도를 제공받는 사회에서, 양육자는 아이의 성장을 궁금해 할 필요가 없다. 대신 그들이 잃은 것은 ‘생각하는 법’과 ‘미래’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쓴 단편소설들인데, 다른 작품들에서도 그런 경향은 보였지만, 이 소설집도 과거, 현재, 미래가 온통 혼재한다. 현실도 마찬가지다. 2024년을 함께 살아간다고 모두가 같은 시대를 사는 건 아니다.
(원래 그런 건지도 모르겠으나)삶이 혼돈인 시절에 다만 다행인 것은, 최진영 작가가 여전히 쓰고 계셨고 계시고 계실 거라는 사실이다. 건필을! 지금도 미래에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