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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죽음 그리고 허무
하늘나비 지음 / 지식과감성# / 2024년 3월
평점 :
인간이 돈벌이를 위해 만든 세계의 균열은, 가늘고 조용한 금이 아니라,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폭음과 참사로 드러난다. 삶이 고되고, 죽음은 가깝고, 희망은 줄어드는 세상이다. 월요일을 주기적인 작은 계기로 삼아 힘을 내보려는데, 비통한 비극의 소식이 덮친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28/0002695170?cds=news_media_pc
희생도 슬프고, 앞으로도 이런 유형의 비극을 예방하고 대비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서 더 슬프다. 커지는 빈부격차와 환경의 급변과 이미 시작한 강렬한 혐오를 인류가 얼마나 빨리 해결할 수 있을까.
https://n.news.naver.com/article/028/0002695122?cds=news_media_pc
19살이라는 나이가, 꾹꾹 눌러쓴 결심과 계획들이 아파서, 귀가하는 길이 온통 어둑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안전한 이는 아무도 없지만, 천재지변이 아닌 재난을 만나면, 문명과 사회에 대한 짙은 허무를 뒤집어쓰고 걷는 기분이다.
생존과 자산을 위해 만든 기성세대의 흉물들을 어떻게 고쳐서 다음 세대에게 전해야할까. 어른들이 만든 규칙과 위반과 범죄와 뻔뻔함과 무지함과 욕심이 힘을 잃은 더 나은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야할까.
다른 제목의 책은 펼칠 생각이 들지 않는 저녁, 삶과 죽음과 허무를 고찰한다는 저자의 이 책을 가만히 넘기며, 복잡하고 무거운 생각을 조금씩 정리해본다. 아직 정리되지도 못한 사고 현장에서 희생된, 자신의 삶이 그렇게 짧을 거란 생각지 못한 이들을 애도하며 부족한 기도를 보낸다.
저자는 인간을 “희망을 버리고서는 살 수 없는 존재”라고 하는데, 절망 앞에서 다음 시간을 살아갈 희망을 어떻게 찾아야하는 건지. 십년도 더 전에 상담 내용과 여전히 비슷한 우울감 다스리는 방법이 반갑고 또 울울하다.
우리 집 십대들이 웃으니, 또박또박 할 일과 계획을 적은 19살이 겪은 세상이 더 고통스럽다. “작게 잡고 천천히 한 발자국씩 아이가 발을 떼듯이 천천히” 그렇게 삶을 살아가려한 계획이 너무나 아픈 기록이 되고 말았다.
자신의 세상을 만들려고 애쓰며 살아온 이들이 사라진 시공간을 생각한다. 관찰자인 내가 민망하고 무례한 것도 같다. 너무나 폭력적인 방식으로 삶을 마치게 된 이들을 마지막까지 찾아내고 예를 다하는 모습이, 한국사회가 삶과 죽음을 대하는 태도이길 바란다. 그렇게 허무를 조금이라도 줄여볼 수 있기를 바란다.
자신의 내면을 성찰할 줄 모르고, 삶에서도 여전히 휘둘리는 점이 많은 내가 성장 중인 아이들의 삶에 대해 조언이나 가이드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참 무섭고 무도한 오만이다. 수능시험을 보지 않겠다고 했을 때도, 생각이 달라져서 대학을 가겠다고 했을 때도, 나는 듣기만 하고 응원만 했다. 아이들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것도, 기억하기를 바라는 것도, 사랑과 신뢰뿐이다.
다시 유명을 달리한 19살의 청년 노동자를 생각한다. 꿈을 꾸고 미래를 설계하고 목표를 적고 희망을 품은 기록을 생각한다. 인간은 사실 “서로 돕고,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 나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서, 좋은 사회는 안전하고 친절해야 하는 것인데. 그의 삶과 죽음은 첫 직장에서 멈췄다.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는 사회를 바꾸지 않아서 이득을 보는 이들은 누구인걸까. 정치를 통해서만 사회를 바꿀 수 있는데, 정책을 만들어야 행정을 바꿀 수 있는데, 다수의 목소리가 충분히 크지 않고, 누구도 일하다 죽지 않는 사회는 요원해서 여름밤이 어둡고 서늘하다.
저자의 책 구성이 독특하고 다양하다. 어둡고 무겁고 슬프고 아픈 밤, 마지막 내용이 ‘치매 예방을 위한 수학이야기’라서, 정말 수학문제(난제)들을 책에 담아두어서 생각이 산란되었다. 그 작은 틈이 뜻밖의 위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