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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닌 여자들 - 역사에 늘 존재했던 자녀 없는 삶
페기 오도널 헤핑턴 지음, 이나경 옮김 / 북다 / 2024년 6월
평점 :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한국사회에서 목격한 갖가지 관련 상황들이 떠오른다. 정책이라고 보기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부실하거나 웃기지도 않는, 모욕적인 내용들 - 쪼이는 댄스, 여성 조기입학, 돈 줄게 애 낳아 등 - 이 다수다.
인구가 81억이 넘었는데 여전히 모자랐는지, 인간과 닮은 AI도 만들고 싶어 하는 기이한 욕망이 투자를 받는 과학 기술의 시대에, 여성을 국가가 동원 가능한 자궁 수로 계산하는 전근대적(?) 태도는 현상 유지 중이다.
숨을 고르고 책을 펼쳤다. 문자를 통해 들썩이는 감정을 가라앉히며, 미국 사회의 여성은 ‘애 낳는 일’을 어떻게 파업해왔는지 읽어본다. 로 앤 웨이드 판결을 뒤집은 자유주의 인권국가에서 여성 공동의 경험, 그 역사를 만나본다.
“여성이 자녀를 갖지 않는 이유와 연결된 여러 가지 문제의 역사를 살피지 않으면, 자녀를 갖지 않는 것이 파업보다는 개인의 선택처럼 느껴진다.”
여성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임신 위험을 설파했기에, 임신중지 시술을 살인죄로 재판한 1800년대 미국 기독교 사회의 사례에 놀라 읽다가, 피임 방법들이 4천 년 전, 기원전 1900년으로 거슬러가서 더 놀랐다. ‘현대인’은 얼마나 오만하고 무지한 건가. 여성이 아이를 갖지 않는 이유는 짐작보다 다양했다.
21세기 한국에서도 여전히 익숙하고 가시적인 이유는, “여성과 모성은 가정에 머물러야 하고 근로는 다른 곳에서 이루어진다는 200년 된 믿음”, 그 탓에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고” 느낀 사람들은 자녀를 최소로 갖거나 갖지 않는 것이다.
이미 커리어가 삶의 일부라는 인식은 실재하는데, 유자녀 여성의 임금과 경력 불이익은 성별 차가 모욕적으로 크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갖고 싶지만 갖지 못하는 이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렇다면, ‘어머니’가 되는 방법은 꼭 혈연이어야만 할까.
“시험관 시술이 실제로 약속하는 것은 여성을 생물학적 어머니로 만들어 자궁에 가치를 회복시켜준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할 때가 있고, 그 실패로 인해 여성은 선택지가 적었던 과거보다 더욱 실패한 존재처럼 느낄지도 모른다.”
사회적 약자인 어린이들이 전혀 안전하지 못한 사회를 생각하면, 어른들이 이미 태어난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떠올리면, 생각은 더 복잡해진다. 동시에, 아이 생산자로서 스트레스를 받는 성인들의 삶도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래서 “아이 말고 친족을 만들자”는 운동이 흥미롭다. 과거 공동체에서 함께 양육하던 방식처럼, 똑같지는 않더라고, 낳지 않은 아이들, 아이를 낳지 않은 사람을, 미래 세대들에게 ‘우리’ 가족과 마음과 헌신을 열자는 제안이다.
“어머니와 어머니가 아닌 여성 사이에 현실이라고 알고 있는 구분”은 여성의 택지를 제한하려는 의도였다. 이 재밌고 새로운 책을 통해 나는 역사적으로 늘 존재했던 ‘엄마 아닌 여자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의 개인사와 관련 기록이 우리의 역사다. 우리는 동시대인들은 물론 그들과도 연대할 수 있다.
역사서는 늘 좋아하지만, 특별히 개안을 돕는 책이다. 한국의 ‘엄마 아닌 여자들’도 언젠가 출간될 수 있을까. 읽는 것으로 연대를 시작할 수 있는 날을 고대하며, 존경하는 ‘엄마 아닌 여자’의 기록으로 감상을 마무리한다.
사망 7개월 전, 한 기자는 보부아르에게 전 세계 페미니스트와 여성운동에 어머니상으로 간주되는 데 대한 소감을 물었다. “터무니없는 비유죠.” 보부아르는 웃으며 말했다. “사람들은 어머니 말을 도통 듣지 않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