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미각 - 돼지국밥부터 꼼장어까지, 살아 있는 의리의 맛
고운선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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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고모님이 부산에서 사셨다. 한국 전쟁 중 아버지 혼자 고모 댁에 피난을 가셔서 한참 머무셨다고 한다. 청소년 시절 집을 떠나 산 유일한 기억이라서, 난리 통에도 고모와 고모부가 잘 해주시만 하셔서, 아버지는 부산에 깊은 그리움과 추억을 가지게 되었다.

 

우연이지만, 나의 큰 고모도 부산에서 사셨다. 덕분에 서너 살부터 여름을 부산 바닷가에서 보낼 수 있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은 풍경조차 작은 조각들처럼 남았지만, 내가 바다와 여름밤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그 시절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향은 진하고 소리는 컸던, 설레던 비일상의 시간.

 




부산미각이란 제목의 갠지스강 물색을 닮은 책 표지를 보니, 오래 잊고 지낸 어린 시절 음식들과 부산의 추억이 보글보글 끓어오르듯 떠오른다. 어릴 적엔 계절식이나 특별식으로 먹었던 식재료, 자주 먹었으나 나는 요리해 본 적 없는 음식이 반갑다. 돌아가신 분들의 생전 모습도 환하게 함께 떠오른다.

 

제사를 준비하며 대구가 오기만을 기다렸을 내륙 사람들은 장날을 기대하며 부산 바다의 입 큰 물고기를 무척 반겼으리라. 그런데 실제로 말린 대구는 조선 후기 훨씬 이전부터 유통됐던 것으로 보인다.”

 

어릴 적엔 동태 말고 대구를 자주 먹었다. 담백한 국이나 찜, 껍질을 튀긴 반찬, 대구포 무침 등 활용이 다양했다. 베네치아에서 이탈리아 친구가 시켜준 요리가 대구포 무침과 맛이 비슷해서 신기하고 반가웠던 기억도 있다. 내가 구하지 않은 탓인지 생대구든 마른대구든 본 지가 참 오래다.

 

조선왕조의 음식 기록 문서에는 항상 대구가 자리한다. 왕실의 생일잔치, 제사, 관례, 가례 등 행사에는 최상품으로 진상된 대구가 사용되었다.”



 

평생 동안 먹은 음식 중에 가장 강렬한 감각적 경험은 꼼장어였다. 입학도 하기 전의 일인데 아직도 그 맛이 느껴진다. 석쇠 위에 올려진 양념 범벅인 한 점을 고모부가 입에 넣어 주었는데, 탄 맛, 맵고 짠 양념 맛, 비릿하면서 고소한 맛, 탄탄한 식감이 차례로 느껴졌다. 평생 단 한번 먹은 꼼장어는 대체 불가한 체험으로 각인되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꼼장어를 식용하는 지역이 한국이고 그 원조가 부산이다.”

 

예전엔 그리 달지 않고 조금 짭짤한 밥반찬이었던 숯불화로 양념 소갈비 구이는 여름 바다 물놀이 이후의 저녁식사로서는 최고 특별식이었다. 직화구이와 육식을 가능한 피하며 사는 지금도 문득, 북적거리던 가족들이 한 방 가득했던 근심 없이 행복한 시절의 장면으로 떠오른다.



 

고모 이웃 중에 제사에 화과자(와 양갱)을 올리던 이웃이 계셨다. 나는 놀러 온 친척 조카였지만, 오래 알던 아이처럼 친절하게 대해주셨다. 일 년에 몇 번이나 제사를 치르셨을지, 당시엔 고단함을 몰랐던 어린 나는, 제사 다음날에 가져다주시는 간식거리를 반겼다. 이가 녹을 듯 단 과자(양갱).

 

밀양 한천공장에서 생산된 한천은 80퍼센트가 일본 나가노와 기후 지방으로 수출되고, 나머지는 주로 국내 식품회사로 가서 양갱, 젤리, 푸딩으로 제조되어 우리 곁에 있다.”



 

그리고 해물파전, 동래파전 방식으로 구운 것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고모가 원래 부산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일까. 파전을 초장에 찍어 먹지는 않았다. 해물 자체가 품은 짭조름한 맛이 충분해서 간장도 찍지 않고 그냥 먹었다. 동생이 놀러 온다고 해서, 처음으로 해물파전을 만들어보았는데... 인터넷에서 찾은 온갖 조언들을 따라 해도 바삭하게 되진 않았다.



 

이제는 떠나신 분들과 추억만 남은 음식들을 떠올리며 글을 쓰다 보니 허기가 진다. 음식이 먹고 싶은 건지 사람이 그리운 건지... 늘 헷갈린다. 아무려나... 6월이고 여름이 시작되었으니, 소주를 즐기진 않지만 대선 소주 한 병 사고, 축축한 해물파전을 굽고, 양갱 디저트를 먹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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