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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여름에게 ㅣ 에세이&
최지은 지음 / 창비 / 2024년 6월
평점 :
시작하는 첫 장의 소제목을 보고 웃음이 터진 건 처음이다. 이유는 모르겠다. 아니 굳이 분석해서 밝히고 싶지 않다고 할까. 그렇게 웃으며 시작해서, 얼마 못 읽고 툭툭 소리가 날 정도로 굵은 눈물이 폭우처럼 떨어졌다.
에세이 중에는 간혹, 모든 디테일이 다 다르지만, 내 일기장인가 싶은, 덮어둔 내 감정의 타래를 쑥 뽑아낸 문장들로 이루어진 서사가 있다. 이건 내 이야기가, 경험이, 삶이 아니야... 라고 속말을 아무리해도 그렇게 읽히는.
“어쩌면 이것이 꿈인가 싶을 만큼 온 세상의 공기는 가짜처럼 무거웠어요. 그 여름 새벽의 느려짐, 흐려짐, 무거움은 지금도 거짓말처럼 생생한데요.”
내 할머니는 화상을 입지 않았지만, 할머니가 쓰러진 여름날, 너무 무겁고 너무 습한 공기가 내 폐에 닿지 않는 것만 같아서, 숨이 잘 쉬어지지 않던 그날의 막막함과 두려움이 10년 만에 문자가 되어 이렇게 내 앞에 나타난다.
그러니까, “이게 다 무슨 이야기일까요.” 정오가 되면 벌써 숨이 턱 막히는 열기를 뿜는, “이토록 지독한 여름은 다 무엇일까요.” 올 해의 여름에는 얼마나 많이 오래 겹쳐둔 다른 여름들이 찾아들까. 저자의 대답처럼, “다 사랑이었다”면 좋겠다. 다 사랑이어서 상실은 가장 지독했으나.
“자랑 같지만, 너무나 크고 깊은 사랑을 받았기에 어떻게든 이 사랑을 나눠주고 싶다는 말이에요. 자랑 같지만, 사랑을 하고 있다는 말이고요. 갈수록 더 알 것 같거든요. 제가 받은 사랑이 무엇인지, 제가 지닌 사랑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 할머니가 제게 먹이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이제는 알 것 같아요.”
웃음을 준 제목의 쉼표에 이어지는 문장을 만나 반갑다. 마음이 밝아져서, 나도 사랑만 헤아려보고 싶어진다. 키워주고 사랑도 해준 분들이 계시던 시절의 풍경들. 나도 그런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어떻게 기억될지 모르겠다.
“없음에서 주워 올린 마음. 오직 부재를 통해서만 획득할 수 있었던 마음. 없어서 구할 수 있었던 마음. 이런 건 무어라 이름 붙여주어야 할까요.”
단 하나의 표준 모델이 강력한 한국사회에서, 다른 형태의 가족은 곧 상처와 두려움이 된다. 저자는 그걸 “가슴속의 돌멩이”로 느낀다. 양육자 중에서도 부모(모부)의 부재를 아이의 결함으로 보는 사회에서 잘못된 건 어느 쪽인지.
“할머니의 죽음은 할머니와 함께 내 불안의 한조각도 가져갔다. 그 자리에 또다른 불안과 슬픔과 허무와 좌절과 이름 붙일 수 없는 ‘돌멩이’를 우르르 쏟아 놓은 채. 할머니는 정말, 완전히, 진짜, 나를 떠났다.”
저자의 꿈 속 햇빛 냄새처럼, 내 할머니도 환하게 꿈으로 찾아오신다. 눈이 부신 환한 마당에서 한복 치마를 꼭 잡고 벅찬 행복감을 느끼며 따라다니지만, 현실의 아침이 밝기 전에,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이별이 찾아온다. 매번 울고 매달리지만, 간절할수록 더 빠른 속도로 잠이 깨고 만다. 그런 날은 하루 종일 눈이 시리고 심장이 시큰거린다.
“서러운 마음은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는 걸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다만 서러움이 또 한번 지나가도록, 한겹 덮어둘 뿐이었다.”
자신을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은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문장을 만드는 이유는, 비슷한 돌멩이를 가진 이들에게 가닿기를 바라는 기도와 같다. 다친 사람이 옆 사람은 괜찮은지 돌아보는 그 다정한 시선. 부드럽고 평화로운 생존의 비밀. 믿음, 삶. 다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