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두와 새 친구
옥희진 지음 / 창비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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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에 의식적으로 그림책 권수를 정해두고 읽고 기록하기도 했는데, 또 언제 다 잊고 살았는지, 오랜만에 그림책을 앞에 두고서야 잊었다는 것을 기억해낸다. 첫 장부터 가만 보고만 있어도 행복하다.

 




원근법에 감동 받는 사람이 드물 듯이, 매끈하고 사진과 구분이 안 가는 AI가 생산한 그림들에도 나는 전혀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 인간의 손으로 천천히 태어난 선들, 맑은 색감, 인간의 표정이 가득한 그림에 힘주며 산 어깨가 풀린다. 거울이 앞에 없지만, 내 표정은 빙글빙글 웃고 있을 것이다.

 

채색화도 좋지만, 내용은 더 좋다. 잃어버린 어릴 적 일기장처럼 즐거웠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운이 좋아서, 친하지 않아도, 처음 봐도, 잘 어울려 놀던 시절을 어린이로 살았다. 이름을 묻지 않고도 신나게 같이 놀았다.




 

학교 운동장에서 그렇게 우연히 무작위로 함께 놀던 이들 중에는 동년배가 아닌 이들도 있었고, 철봉을 어려워하며 연습을 하고 있으면 열심히 방법을 가르쳐주던 한두 살 많던 언니 오빠들도 있었다.

 

모든 계절마다 집 앞에서, 동네에서 함께 놀던 이웃 친구들과 다른 학교 친구들도 있었고, 누구도 어느 하루도 외모를 지적하거나, 무슨 옷을 입었는지, 부모 직업이 무엇인지, 집값이 얼마인지를 묻지 않았다. 같이 놀 친구가 늘어나면 더 즐거웠다. 새로운 친구가 새로운 놀이를 제안하면 더 신이 났다.

 

낯설다고 해서 홉스식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방식으로 살 필요가 정말 있을까. 삶이 오징어게임식이어야 할까. 지리적으로 분리되어 낯선 바이러스가 생존에 치명적인 조건도 아니고, 작은 나라, 작은 동네, 멀지 않은 학교를 다닌다는 차이만 있다면.

 

기억은 미화되기 마련이라서 내 기억도 그럴지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잘 모르고도, 함께 어울려 놀고 살았던 경험을 했다고 기억한다. 매번 돌아봐도 행복한 기억이다. 그렇기 때문에 왜 그렇게 살 수 없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게 살 수 없다는 말을 믿지 못한다.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누군가가 늘 도와준 기억도 아주 많다. 친절한 어른들의 도움을 받은 기억도 많다. 사고 난 차량에서 꺼내 준 분, 기절한 나를 병원까지 데려다준 분도 있다. 어릴 적 나는 사람과 세상을 온전히 신뢰했다.

 

그런 기억이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일렁이며 다가와서 한참을 머물렀다. 그림책을 보는데 함께 노느라 즐거운 여러 목소리들이 들렸다. 행복했다. 기분이 간질간질해서 아주 조금 울고 싶기도 했다. 다시 그림책을 찾아 봐야겠다.

 

외모 강박에 획일성에 전체주의적 말과 행동이 강력한 한국사회, 차별과 혐오와 폭력 말고, 이런 보드랍고 다정하고 행복한 이야기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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