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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 선배 - 8번의 실전 개국노트
이태영 지음 / 지식과감성# / 2024년 2월
평점 :
대학 입시가 얼마 남지 않은 날, 한 친구의 지원학과를 그제야 문득 물어보았다. 약학과를 간다고 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뜻밖이라서 이유를 물었다. 그렇게 한국에서는 자체 개발하는 약이 없고, 한국인에게 잘 맞는지 부작용은 어떤지 아무 임상 실험 데이터로 없이, 수입하는 약만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약학을 전공해서 한국인에게 잘 맞는 약을 개발하고 싶다는 친구의 꿈이 존경스러웠다. 고민도 없이 재미있을 것 같은 공부만 하고 싶던 나를 반성했다. 그렇게 약학을 택한 친구는 진지하고 열심히 공부했고 유학도 갔다.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자체 약개발은 비용부담으로 늘 기피되었다.
친구였지만 잘 알지 못했고, 덕분에 깨우친 현실에 고마워하며 존경했지만, 어떤 길을 걷고 삶을 사는지 자세히 챙겨듣지는 못했다. 이제 서로 중년이 되어 알아본 소식에는 어머니의 고향인 남쪽 지방에서 약국을 개원하고 평화롭게 살고 있다고 했다.
내가 가장 많이 경험한 약국은 부모님이 오래 다니신 동네의 오랜 이웃 같은 약국과 대형병원과 연계된 복잡하기 그지없는 대형약국이다. 공동체에 관한 특별한 관심과 뜻을 품고 개원한 약국들도 있고, 서점을 겸하는 약국도 있다. 세상엔 짐작과 상상보다 다양한 약국이 있을지 모른다.
이 책 제목을 보면서, 오랜 친구가 생각났고, 안부만큼 약국을 개원해서 살아간다는 건 어떤 삶인지가 궁금했고, 친구의 아내가 결혼 전, 살고 싶은 지역을 골라 약국에 취업해서 몇 년씩 살았다는, 무척 부러웠던 이야기도 생각났다. 약국과 약사를 배울 기회라고 생각해서 반갑게 책을 펼쳤다.
“약사로서 20년 이상을 보내오면서 자연스럽게 많은 경험을 해보았다. (...) 자랑할 것도 아니지만, 다양한 개국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 매번 새로운 약국을 찾기 위한 노력 그리고 그 약국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을 때의 상실감을 견디기 힘든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내용은 내 짐작보다 역동적(!)이다. ‘약국이라는 직장 세계와 약사의 분투기’처럼 읽힌다.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운영하는 약국들이 있고, 약사의 목표 또한 그러하다. 어쩐지 평온해보이는 직업이라는 선입견이 훌훌 사라졌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나마 까맣게 잊었던 ‘의약 분업’때의 이야기도 현장 이야기로 배울 수 있어 좋다.
“대형약국의 특징은 카운터가 조제도 하고, 한약도 팔고, 건강 상담을 하면서 고가의 비타민과 건강 보조 식품 등을 판매한다는 것이다. 옆에 서 있는 초짜 약사들은 간단한 부외품이나 상담이 필요 없는 일반약만 분주하게 판매하는 게 하루 일과로 상담력이 없는 약사는 설 자리가 없는 그런 약국이었다.”
“클리닉 약국에 근무하게 되었다. (...) 환자 맞춤으로 처방하는 병원으로 기본 당뇨약의 활용에 대해서 원 없이 공부했었다. (...) 당뇨 주사제 또한 다양하게 사용했다. (...) 약 이외에도 많은 것들에 대해서 배우게 됐다. (...) 조제와 상담에서 두려움이 없어지게 되고, 어떤 병원 처방을 받는 약국이라고 해도 개국하는 데 걱정이 없었다.”
이외에도 다양한 약국에서의 근무 경험을 가지고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개국을 한다. 행동력과 추진력이 놀랍다. 그 과정의 이야기가 낯선 분야의 직업이라서 전혀 모르던 세계를 내게 보여준다. 예전 친구 덕분에 깨달은 것처럼. 내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참 피상적이라는 자각도 함께.
1인 사업장이고 창업이라는 점에서 개국은 물론 운영의 어려움도 온전히 약사가 지는 것이 냉혹하다. 컨설팅 브로커도 있다니 세상은 참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저자의 고군부투가 기록으로 남았으니, 개국을 고민하는, 도움이 간절한 약사들에게는 분명 생생한 참고 자료가 될 것이다.
나는 친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이렇게 조금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