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는 왜 피로한가 - 제로섬게임과 피로감수성
김정희 외 지음 / 르몽드코리아 / 2024년 3월
평점 :
피로하지 않다고 하는 사람이 잘 없지만 한국 사회는 피로한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는 고요한 상태인 적도 없다. 만성 피로감을 느끼는 상태로도 요란하고 소란스럽게 과소비를 하고, 무한경쟁을 하고, 쉬지 않고 타인을 판단하고 비난하고 악플과 댓글 공격을 하느라 떠들썩하다. 휴가조차 게시물 생성을 위한 고단한 작업처럼 보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잠조차 꿈조차 피로할 지도 모르겠다.
인간human being은 시간을 내어 명상과 호흡을 하는 잠시 동안에나 가능한 체험 같고, 대부분의 평생을 다른 인간human doing으로 살아간다. 자기 자신이 왜 피로한지는 자신이 가장 상세하게 알 수도 있겠지만, 뜻밖에 모르는 작용들도 있다. 그래서 이 책은 피로를 줄이는 방법, 같은 제안서가 아니라, ‘왜’ 피로한가를 제목에서 묻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안전’에 대한 결핍이 욕망이 되어 버린 것이다. ‘진정제’로는 진정되지 않는 ‘피로’와 ‘불안’이 현대인의 삶 속에 떠돌고 있다.”
가장 피곤한 목요일을 골라 아홉 개의 이야기를 만난 내용을 정리한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부모들이 자식을 보는 한결같이 못마땅한 시선은 놀랍다. 반면교사로 삼아야지 하는 결심을 새롭게 한다. 인생의 어느 시기가 피로감이 덜할까하는 생각을 무심히 하는 현실이 서글프다. 특히 상대적으로 온갖 스펙을 채우고도 취업은 물론 미래가 흐릿한 소위 Z세대 이야기는 잠시나마 내 피로감을 앞서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발전과 성과를 평생 강요하는 사회, 실패를 교육과 경험, 새로운 발견을 위한 과정으로 인식하지 않고 경멸하고 비난하는 사회적 분위기, 실패의 책임을 무능함과 나태함으로 몰아붙이는 시선, 남들과 같지 않으면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소외시키는 문화!”
사회관계와 문화에 따라 줄일 수도 부재할 수도 있는 쓸데없이 느끼는 피로감의 원인들은, 30년 전에도 지금도 변한 게 없는 듯해서 안타깝고, 대중문화에서 더 깊이 있고 농밀하게 표현된 피로감과 결부된 다층적 폭력구조에 대해서는, 무거운 생각들에 말로도 문장으로도 잘 정리가 되지 않는다. 누군가 실마리를 찾으면 그 실을 당기는데 힘을 보태야지 하는 생각.
무엇보다 인류가 현재의 위기상황에 도착하게 한 자본주의 시스템이 피로감의 근본적이고 큰 원인이라는 점에 씁쓸하게 동의한다. 이 거대한 구조를 어떻게 흔들어 변화시킬 수 있을까. ‘고객님’과의 사랑이 넘치는 시대, 글로벌 기업의 상품 소비를 국가도 장려하는 시절, 생산자이자 소비자이자 고객님인 우리는 시지프스의 정해진 여정 같은 ‘선순환’을 믿고 선한 소비를 계속해야하는 운명인걸까.
“한국인은 남녀노소 모두가 바쁘다. 아무것도 안하고 있으면 너무 불안하고 안절부절 못하는 문화 (...) 경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가장 최신의 상품을 가장 빨리 구입해서 사용하는 것을 첨단을 걷는 것인양 자랑스러워 하는 부류, 공격적으로 남의 단점이나 부족한 점을 지적하는 교만함, 어렵거나 잘되지 않는 일에 꼭 남 탓을 하는 책임전가 족(責任轉嫁族)? 마치 조바심으로 어디에도 집중을 못하고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여지는 것은 왜일까?”
친구들에게 유튜브 시청 환경이 변했다고 들었다. 광고 없이 영상을 보려면 프리미엄 서비스를 소비하라고, 즉 돈을 더 내라고 한다고. 아니면 짜증나고 피로감이 더 쌓일 때까지 버텨보라고 끈질기게 광고를 보여준다고. 이미 생존을 위한 기본 환경 마련을 위해 빚을 지고 피로감을 삼키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소비진작의 선동은 그치지 않을 듯하다.
“한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빚을 지게 하는 거다.”(노엄 촘스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