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에 봄을 달고
지향숙 지음 / 지식과감성#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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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이 아닌 책을 자연스럽게 읽기 시작한 것도 그리 길지 않지만, 에세이라는 문학을 알게 된 것은 더 근래의 일이라 할 수 있다. 왜 자기 일기를 읽으라고 출판하는 거지? 자전소설만으로도 때론 불편하게 넘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했다. 창작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이것저것 일단 읽다보니, 에세이란 내가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고 예단한 개인사나 사적 감정의 기록만이 아니라, 논픽션 르포에 가깝기도 하고, 전혀 모르던 세상을 안내하는 다큐멘터리 같기도 하고, 서로가 오래 깊이 나누는 대화 같기도 하다고 느꼈다. ‘에세이란 다양하고 무궁한 세계였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세상을 알아가는 것이다. (...) 책을 읽고 각자의 생각과 가치관을 존중하면서 다양성을 인정하는 독서 모임에서는 서로의 성장을 생성하는 힘이 있다.”

 

직접 만나는 사람들의 수는 한정되어있지만, 책으로 만나는 사람들의 수는 내가 펼치는 수만큼 늘어난다. 현실에서도 몇 시간씩 속 깊은 얘기를 나눌 관계가 흔치 않다는 걸 생각하면, 책으로 만난 이가 더 친밀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무엇보다 사람에 대해서도 삶에 대해서도 늘 배우게 된다.

 

“50대에 국문학을 공부하고 졸업을 했습니다. (...) 배가 부르고 등이 따뜻한 사람보다 춥고 배가 고픈 시간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목표는 40에 퇴사하고 마음대로 살아보는 것이었는데, 40은 금방이었고 그렇게 살기에는 삶이 많이 무거워졌다. 별다른 계기가 없는 한 50에도 퇴사를 못할 것 같다. 도대체 다들 어떻게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것인지. 부럽고 궁금하다. 텃밭 농사를 하며 책방을 운영하는 꿈은 상상 속에서만 어찌나 황홀한지

 

책장에 책이 한 권씩 꽂힐 때 느꼈던 어린 날의 행복은 지금까지도 유효기간이 없다. 책을 사랑했던 이유만큼 삶도 소설처럼 다양했다. 책 때문에 망한 것인지 책 때문에 노후의 꿈을 꾸게 되었으니 성공한 것인지 미지수다.”

 

사람으로 힘들고 지친 만남은 노후에는 없을 것이다. (...) 인생의 책임감에서 해방되면 마음이 닿고 싶은 항구에 닻을 내리고 싶다.”

 

화들짝 놀랄 내용의 시련의 순간들을 만난다. 누구의 삶이라도 항상 꽃밭일 수는 없지만, 혼자만의 힘과 의지로 극복하는 방식 말고 필요한 도움이 멀지 않은 사회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한다. 저자의 강인한 선택과 행동력에는 중언부언 없이 감탄을 보낸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순간의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삶은 희망도 절망도 없는 찰나이다. (...) 그 결정의 중심에서 육교는 나에게 삶과 죽음의 경계였다.”

 

시련이 없었다면 삶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적당한 안일함과 적당한 편안함에 길들여져 삶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살아 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 사라지는 것들이 많다. 사물도 사람도 그렇다. 애타게 찾게 되지도 않는다. 되돌릴 수 없는 것은 부지기수고, 애착 역시 느슨해지니까. 비슷한 연배의 다른 삶에서 배울 것도 공감할 것도 적지 않았다. 아직 남은 봄을 서로 좀 더 즐기자고 응원을 보낸다.

 

한 사람의 삶이 사라진다는 것은 체온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공간에서 사라져 간 것은 체온의 온기다. 사물에 스며든 사람의 체온을 기억으로만 느껴야 할 때 상실감은 슬픔이 아니라 끔찍한 고통이다.”

 

꽃과의 사랑에는 인간의 무의미한 감정에 지배당하는 복잡함도 없다. 나와 너라는 분리된 자아의 팽팽한 줄다리기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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