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종의 나라 - 왜 우리는 분열하고 뒤섞이며 확장하는가
문소영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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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종이란 단어는 지칭같지만 실은 가장 일반적인 기본값이어야 한다. 나는 그렇게 이해하고 지지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 혼종이 아닌 것은 없다. ‘순수단일은 과학적으로 현실적으로 허구, 신화, 헛소리다.

 

생명이든 문명이든 혼종성은 생존과 작동 원리다. 저자가 이 책에서 소개하고 설명하는 문화본질적으로 유동적이고 역동적이고 적응력이 강하며, 새롭고 혁신적으로 탄생한 무언가, 즉 수많은 혼종의 단계를 거친 결과물이다.

 

저자와는 연배, 전공, 직업도 다르고 영국에서 지낸 시기도 20여년 차이가 난다. 극동에서 왔냐고 내게 물던 그 시절엔 소위 국뽕이랄 것도, K-무엇도 없었다. 그래서 모든 다름이 궁금증과 몰입을 돕는다. 정말 재밌다.

 

저자가 다루는 미술, 예술, 대중문화 중에는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 적지 않다. TV 프로그램은 전무해서 시청하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그만큼 저자가 다각도로 분석하고 설명하는 문화권력, 상징자본, 혼종성의 내용이 흥미롭다.

 

지금의 많은 가족 관찰, 상담 예능은 선정적인 한편, 가정의 유지를 피해자의 인권보다 앞세운다. 선정주의와 가족주의의 기괴한 결합이다.”

 

인적 자원human resources’ 이라는 단어가 출현한 직후 비판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인적 자본은 통용어가 되고 일상 관계에서 경제어가 사용된다. 초등학생들도 손절*’이란 표현을 쓴다. 경제 비전공자 전문가들도 사용한다.

 

* 주식 투자에 있어 매몰비용을 고려하여 손해를 감수한 매도 행위

 

언어가 사유라면 혼종된 단어들에서 알차 차릴 수 있는 이 시대의 강력한 이데올로기는 무엇일까. “경제학적 비용편익분석에 의해 인간관계의 지속과 중단을 결정하는 자본주의 단어가 드러낸 사회의 명암은 무엇일까.

 

기괴하고 파괴적이며 유해한 결합을 이룬 혼종성의 사례들은 다양하다. 저자가 아주 분명하게 지적하여 시비를 가르는 문장들이, 비겁한 헛소리로 가득한 양비론과 균형과 중립으로 가득한 포털 기사들을 찢어 버리는 것처럼 시원하다.

 

비전문가들이 여론을 주도하고 비판적 지식인들이 조리돌림당하면, 반지성주의가 되는 것이다.”

 

한류와 K-무엇들의 한국적임은 사실일까 고집일까. 국민학교를 다니며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고 외웠다. 누구도 그런 사명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BTS는 국위선양을 하는 애국청년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


 

서구가 자기중심주의를 못 벗어난 것처럼, 한국의 민족주의도 그 정서를 진지하게 살펴봐야한다. 특히 제가 듣기에 좋은 말에만 열광하고 조금이라도 다른 의견은 묵살과 조롱과 협박을 가하는 협소한 마인드가 숨 막힌다.

 

민주주의를 나의 무지나 너의 지식이나 별 차이 없다는 것으로 여기는 착각이 미국의 반지성주의를 키워왔다.” 아이작 아시모프 <뉴스위크> 1980

 

수많은 현상과 주의와 철학과 정치경제학적 배경을 자유롭게 출력시키고 결부하여 설명하는 사유가 유쾌하다. 우물쭈물하지 않으면서도 공격성이 아닌 설득력 있는 논조가 멋지다. 덕분에 내 화는 식었다. 즐겁게 배웠다.

 

열병 같은 열기와 공격성이 사라지고, 한국 사회의 사유와 담론이 혼종답게 마구 섞인 풍성한 체제의 토사물이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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