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 - 숲과 평원과 사막을 걸으며 고통에서 치유로 향해 간 55년의 여정
배리 로페즈 지음, 이승민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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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가 공원이 되고 집이 기념관이 되는 행정 프로젝트가 결정되었기 때문에 불가피한 이사를 해야 했을 때, 어머니는 견딜 수 없는 이별을 하는 이처럼 많이 우셨다. 괜히 자식들은 제 잘못이 있는 것처럼 죄스러웠다.

 

누구나 장소가 있어야 생존을 할 수 있고, 그 장소는 곧 안전한 피난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마치 공간이 기억 자체를 담지한 각자의 삶의 고유한 존재가 되는 것처럼, 어디를 둘러보아도 살았던 이들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내가 다섯 살에 이사 온 단독 주택에서 동생을 낳고 우리를 키웠던 젊은 어머니는, 성장한 자식들을 다 떠난 보낸 뒤에도, 그 집을 쓸고 닦고 가꾸고 우리를 기다리며 거의 평생을 사셨다.

 

그 장소를 확장하면, 짐정리를 돕고 인사하러 나오신 오랜 이웃들과 어릴 적 자주 들락거린 너그러웠던 그들의 집이 있다. 더 확장하면 학교와 가게들과 다양한 공동의 공간들이 있다. 익숙한 거리조차 오랜 친구 같고, 너무 높지 않아 자주 올랐던 산과 계절별로 고운 풍경을 전하던 강변이 그립게 존재한다.

 

바쁘기만 한 성장한 자식들은 서둘러 서툰 위로를 건네며 이사를 마쳤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그날 목격한 어머니의 슬픔이 나는 두려워졌다. 마치 오래 삶을 견디고 견딘 이가 이사 - 장소를 빼앗김 - 를 계기로 어딘가 무너지신 건 아닌지, 불쑥 떠오르는 사념에 숨이 턱 막히곤 했다.

 

나이든 부모를 제대로 마주하고 돌보는 일을 잘 배우지 못한 나이만 찬 자식은 어머니의 울음을 통해 지킬 수 있을 듯한 작은 결심을 했다. 대단한 효도와 위로는 아니지만, 적어도 어머니에게 비상 알약처럼 복용할 수 있는 무언가를, 슬프고 아플 때도 한 알씩 꺼내 먹을 수 있는 기억을 같이 만들고 싶었다.

 

매주 방문해서 옛집이 변하는 모습을 같이 보면서 천천히 이별을 했다. 대부분의 이웃들도 이사를 가셔서 반가운 얼굴들은 적었지만, 아직은 옛 거리의 모습이 남은 동네를 천천히 걸었다. 함께 살 때 함께 걷는 일을 더 자주 했다면 좋았을 거란 생각에 식초를 잘못 삼킨 듯 마음이 쓰렸다.

 

모든 장소는 유일무이하며 다른 어디에서도 되풀이되지 않는다. 놓치는 순간 사라져버린다.”

 

전화 통화로 안부를 묻는 일 대신 직접 만나고 걸으며 얘기를 나누니 날씨와 계절의 변화도 함께 만나게 되었다. 어머니는 옛집과 이사에 대한 아픔을 얘기하는 대신, 자신의 고향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어 들려주었다. 내가 만나본 적 없는 생기발랄한 어린이가 이야기 속 장소들에서, 다치고 놀고, 친구들과 싸우고, 심부름을 하고, 전쟁을 피내 피난을 가고, 사람들을 만나고, 동생을 돌보며 생존하고 성장했다. 그리고 나는 모르던 야생화의 이름을 매주 배웠다.



 

1950625일 전쟁이 일어났고 1953727일이 휴전이 체결되었다는 문장으로는 전혀 알 수 없는 풍경들이 어머니의 기억 속에서 생생한 색을 전혀 바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죽은 이들의 피가 줄기를 이루며 흐르던 날도, 쌕쌕이 비행기가 폭탄을 떨어뜨리며 날던 날의 공포도, 급히 피하다 찔레 가시에 찔려 피가 난 아이들의 얼굴도. 그리고 황폐해진 땅과 물에서 황망한 정신으로도 먹을 것을 찾아 뭐라도 먹으며 살아남은 이들의 이야기도 있었다.

 

찬란한 감동과 지독한 고통이 함께 했던 어린 베리 로페즈의 서사는 눈물 속에서도 차분하게 끝까지 읽어낼 수 있는 감당할 수 있는 인연처럼 다가왔다. 그와 내 어머니와 내가 찾아가고 만나고 머물고 살았던 장소들은 겹치지 않지만, 각자의 눈에 새겨진 풍경들도, 각자가 반추한 것들도 다르지만, 나는 그가 낯설지 않았다. 너나없이 상처를 입고, 때론 흉터로 쉽게 아물지 못하는 상처를 입고도, 장소와 관계에 기대고 힘 입어서 삶의 연결을 놓지 않고 살아간다는 닮은 슬픔.

 

자기 시련이 이례적이지 않음을 인정하고, 그로부터 타인의 고통에 대하여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구원과 아름다움에 대하여 더 넓은 인식을 직조해냈다.”

 

성취 지향적 삶을 사느라 부모와 집과 고향을 떠나 오래 살았다. 생의 반환점은 여러 해 전에 돌았다. 내 어머니는 어느새 예순이다. 오래 전 영국에서 논문 지도를 해주선 교수가 글을 쓰다 고민이 되면, 강에 관한 건 강에 가서 물아보라고 했다. 위로와 격려를 담은 농담이라고 생각한 점이 많이 아쉽다. 그때 강에 가서 물어볼 것을. 오래 강을 보고, 자주 보고, 끈질기게 물어 볼 것을. 답을 얻거나 힘을 받아 안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누구도 혼자 생존이 가능한 존재로, 현명한 지혜를 갖춘 채 태어나지 않는다. 누군가가 태어났다는 것은 많은 존재들이 바라고 도왔기 때문이다. 내 삶은 나 혼자 만든 것이 아니다. 다 셀 수도 없는 알거나 알지도 못하는 다른 존재들의 노동과 사랑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리고 사랑을 한다는 것은, 사랑을 주고받는다는 것은 구체적인 연결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분리되고 쪼개지고 떨어져나가고 헤어지면서 우리가 이룬 많은 것들이 차라리 하지 않았으면 좋을 실패들이다. 그러지 않고도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까. 깊이 들여다볼수록 문명 전체의 문제가 되고 만다. 그러나 나는 훌쩍거리며 이 책을 읽는 동안 거대한 절망과 발작 같은 공황 대신 조곤조곤한 위로를 받았다. 특별한 여행지가 아닌 동네 산책만으로 내 어머니와의 연결점을 차곡차곡 늘려 나가는 것처럼.

 

개인으로서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어 낼 수는 없을 거라는 무력함과 무기력 대신, 나는 베리 로페즈의 미풍처럼 소곤거리는 다정한 말을 따라보기로 한다. 잃어버린 것에 대한 절망 속에서 죽기보다 앞에 놓인 가능성을 위해 사는 것이 내게도 중요하다.

 

인간이 우주에서 유일한 집에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를 알게 된 후의 충격과 이후의 끝없이 반복되는 희망의 좌절과 대응 부재는 생존의 위태로움을 발작 같은 불안으로 경험하게 한다. 미래세대 걱정을 할 일이 아니었다. 통계 숫자들은 이미 늦었다고 한다.

 

하지만 낙관하며 살아야하는 것인지 묻는 친구들 덕분에 나는 오래 고민했고, 살아 있는 동안에는 희망하기로 했다. 다른 선택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다른 선택은 마음이 들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살아 있으면 아무리 적어도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고 믿고 싶기 때문이다. 뭐라도 하면 뭐라도 달라질 것이니까.




 

고령의 부모와 아직 십대인 아이들 어느 쪽을 보아도, 감당해야 할 책임과 두려움이 불쑥 짓쳐들지만, 마음가짐을 제대로 세우고 행동하는 것은 공포를 수용하지 않는 것과는 다르다. 이것이 반백(半白)의 반백(半百)이 되고서야 이제 배운 사랑을 길러나가는 법이라고. 아직 남아 있는 여기살아 있는 것들이 아주 많다고. 힘이 없지 않다고. 얼마가 되었든 이울어가는 몸 안에 아직 남아 있는 생명이라는 선물을 만끽할 것이라고지금, 여기, 살아 있는 것들이 서로를 살아가게 하는 사랑의 기록이... 뜨겁고 아픈 고통도 눈물도 닦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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