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단어 - 정치적 올바름은 어떻게 우리를 침묵시키는가
르네 피스터 지음, 배명자 옮김 / 문예출판사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렵다, 정치적 올바름도 정체성 정치도... 관련 분석과 비판의 내용들도.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고도 이미 하고 있는 행태를 인지하는 것도. 옳은 것보다 쉬운 것만 선택하는 것은 문제지만, ‘옳다’는 것이 전가의 보도나 무적 방패가 되는 것도 문제다. 미국 진보 엘리트주의가 민주주의를 망쳤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러니 기회가 있다면 정확히 잘 배워서 파악해 봐야한다. 자신이 차별주의자란 것을 모르던 이가 책을 읽고 구체적인 사례와 통찰력 있는 설명을 통해 비로소 깨닫듯이.


“이른바 포용의 언어는 저학력 폭도보다 우월해지는 수단이자 먹고살기 바빠 진보적 담론의 최신 흐름을 미처 따라잡지 못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수단이 되고 만다.”







‘정치적으로 올바른politically correct, PC’란 표현은 25년 전 영국에서 처음 들었다. “PC가 재미를 다 망쳤다”라고 한 이가 백인 영국 남성 교수였기에, 나는 잘 모르고도 PC편에 서자고 혼자 생각했다. 짐작일 뿐이지만, 그가 재미를 느끼는 표현에는 저보다 약자를 조롱하고 엄중한 사회적 조건들을 냉소하는 내용일 거라 짐작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랬다.


그래서 PC한 표현을 배워서 사용하려 노력했고 기회가 생기는 대로 주변에도 잘 알리고 싶었다. 그 후 이십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그건 내가 느끼기에나 긴 세월이지, 초기에 제안된 PC한 표현들도 그다지 일상 통용이 잘 되고 있지는 않다. 거기에 새로운 표현들은 계속 늘어났다.


언어는 강고한 사유라서. 언어 표현은 화자에 관해 많은 것들을 알려 준다. 차별주의적 언어를 사용하면 차별주의자로서 사유하는 것이다. 변명의 여지는 없다. 그렇다고 “이 차별주의자!”라고 비난하자는 뜻이 아니다. 인지하지 못한 채, 교육받고 사회화된 생각들이 여러 층을 이루고 있다는 것, 그러니 잘 고민해보고 바꾸는 게 더 나은지 함께 얘기하자는 권유다.


그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문제이고, 아마 평생 고치고 바꿔도 끝이 없을지 몰라서 그렇다. 그래서 새로운 표현들을 알게 되면 반갑기도 하고, 바로 고쳐지지 않아서 간혹 버겁기도 하다. 그리고 누군가 내가 알고 있는 PC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에, 그 사람의 의견을 참을성 있게 듣는 일이 좀 힘들어졌다. 마치 상한 재료로 요리한 음식은 건강하지도 맛있을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내가 선의로 무엇을 한다고 해도, 설명과 전달은 다른 훈련을 필요로 한다. 어렵다. 스스로 깨달으면 저항감이 덜하지만, 타인의 지적은 수용에 더 힘이 든다. 매번 같은 설명을 반복하는 것도 힘이 든다. 인내심이 적어서이겠지만, 2단 구구단을 계속 외워야하는 벌을 받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아마 먼저 알았기에 갖는 이런 태도가 때론 고압적이거나 훈계적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지적하듯이 잘못 말할까 두려운 누군가를 침묵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내용보다 표현에 더 집중하는 어리석은 경향을 부추겼을 수도 있을 것이다.


독일 언론인이 저자라서 상황이 많이 다를 수도 있겠단 생각했는데, 공감되는 내용도 적지 않았다. 물론 새롭게 배운 내용도 많았다. 그리고 너무나 다른 각국의 정치사회적 환경을 비교하지 않을 수가 없으니, 어떤 부분은 반론하고 싶은 생각이 불쑥 들기도 했다. 


침묵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말해야할 것이 있는 이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사회, 정확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럴 수 없는 이들이 있다는 것도 인지하고, 드러난 표현보다 더 중요한 메시지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회를 희망한다. 항상 잘 할 자신은 없지만 검열보다 표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않는, 오만하지 않은, 가족, 동료, 친구로 사는 것이 나의 큰 소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