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한 번쯤 절 여행을 떠난다면
김영택 지음 / 좋은땅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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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주말에 가족들과 사찰 방문하는 걸 좋아하셨고,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청소년기의 나는 이제 그만 같이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자주 가셨다. 지식도 없고 반쯤은 내키지 않은 방문이었으니 아쉽게도 그 시절에 배운 바는 참 없다.

 

나중에 혼자서 혹은 친구와 함께 내가 직접 운전해서 어느 사찰을 방문하다보면, 예전 생각에 웃기기도 하고 예전 모습을 더 많이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아깝기도 했다. 특히 늘 친절하던 스님들과 뭔가 낯설고 맛있는 걸 찾아주시던 공양주 보살님들의 안부가 문득 대책 없이 궁금하고 죄송스럽기도 했다.

 

철학자 헤겔의 통찰처럼,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인간으로서 삶에 지치거나 상처 받은 이후에나 비로소 가능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종교가 없지만, 여행 일정에 어느 사찰을 하나 꼭 넣었던 이유는, 속세와의 잠시 이별을 보장해주는 듯한 고즈넉함이 한없이 편안해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좋아한다고 배움이 당장 깊어지진 않는다. 체계적인 공부가 좋고, 넓고 깊은 지식과 사유를 늘 배우고 싶은 내게, 이 책은 저자의 평생이 모이고 담긴 귀하고 유익한 책이다. 역사를 전공하고 가르치고, 퇴직 후 불교대학에서 공부하고 사찰을 연구한 기록이다. 읽는 내내 역사해설 전문가와 문화 도슨트와 함께 가보는 여행 같았다.

 

이 책은 사찰 여행을 좋아하거나 관심이 있거나, 혹은 관련 역사와 문화지식을 배워서 새롭고 깊이 있는 여행을 다시 하고 싶은 누구나에게 도움이 될 한국사찰 문화해설서이다. 문장이 쉽고 정보가 가득하다. 공부하듯이 필기도 하고 외워보고도 싶어지는 알찬 책이다.

 

대충 단편적으로 배운 지식들을 이 책 덕분에 잘 정리해보았다. 불보(부처님)와 법보(부처의 가르침, 교법), 그리고 승보(가르침에 따라 화합하고 수행하는자)라는 삼보부터, 예불문과 그 뜻, 칠정례, 무엇보다 이란 장소가 불교에서 가지는 의미까지.

 

시난고난한 역사로 상처투성이인 한반도의 반쪽에, 불보를 상징하고 정골사리를 봉안한 사찰도 있고, 경전이 팔만대장경판을 보관하는 절도 있고, 고려 시대부터 16명의 국사를 배출한 절도 있다는 것은, 후손으로서 생존과 보전에 대한 애틋함과 존경심을 동시에 품게 한다.

 

통도사의 무풍한송길 이야기를 읽을 때면, 더운 여름 천천히 그 숲길을 걸었던 추억이 감각으로 돌아오고,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그 길을 걸어간 수많은 다른 이들의 삶의 궤적을 상상해보게 된다.

 

그저 사찰이 시작되는 입구라고만 생각해서 가벼운 합장을 하며 들어섰던 일주문 이야기에는, 불법을 수행하는 자로 살고자, 수백 개의 계율을 지키겠다는 단단한 결심을 하고 산문을 넘은 이들을 생각하였다.

 

불교 철학을 몰라서, 육화당六和堂이란 건물의 용도를 이제 배운다. 욕하고 싸우고 물리적 폭력을 가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 지금에, 상대와 마음이 합해지도록 여서 가지 화합의 방법을 수양하고 상대를 공경하는 여섯 가지 조건을 배우는 곳이라니 영성을 갖추지 못한 세속인으로 울울하고 부끄럽다.

 

적멸을 뜻하는 열반은 죽음이라는 소극적인 의미로만 사용하지 않는다. (...) 불을 불어서 끄다, 불이 꺼진 상태를 의미한다. 즉 타오르고 있는 번외의 불꽃이나 갈애의 불꽃이 완전히 꺼져 고요한 상태다.”

 

감탄스러운 목차에는 아름다운 천년 고찰의 이름들이 초대장처럼 적혀있다. 좀 더 느긋한 봄이 되면, 나도 느긋하고 고요한 여행을 떠나 고요한 시간을 보내다 소란한 속세를 견딜 힘을 얻어 오고 싶다. 그냥 가도 좋겠지만, 저자가 정성스럽게 전하는 지식을 배우고 떠나는 것도 참 의미 있는 여행이 될 것이다. 사찰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의 다정한 길잡이가 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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