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 비평 203호 - 2024.봄
창작과비평 편집부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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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무력함을 더 묵직하게 하는 일들은 스케줄표가 있는 것처럼 이어졌다. 원래도 깜냥이 작은 나는, 큰 애씀도 저항도 없었는데 미리 지치고 말았다. 이번에 그 피로감을 핑계 삼아 최대한 열심히 외면했다.


그렇게 살아서일까, 아무리 인간끼리 한 약속일뿐이지만, 새해가 되었는데도 이전처럼 헛된 결심을 하고 애써 반갑게 새해를 맞는 일도 어려웠다. 그래도 봐주는 법 없는 시간은 흘러 3월의 마지막 주다. 곧 4월이다.


10.29 이태원 참사,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위해 발의된 특별법을 하롭번째 거부한 대통령, 해병대 채수근 상병 사망사건, 박정훈 대령 항명죄 기소, 사법농단으로 기소된 전 대법원장 무죄판결, 부당 합병과 분식회계에 관여한 재벌홍수 무죄판결, 부끄러운 일 한 적 없다는 탄핵된 전직 대통령, 현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풀려나는 관련 하수인들, 오로지 사익을 위해 남용되는 권력, 공방론과 중립과 팩트체크 뒤로 숨은 편향된 주류 미디어 환경, 기사로는 제목도 보기 싫었는데, 계간지를 보며 정리 필사하니 뜻밖에 마음이 평온하다. 


“말은 스스로 움직일 수 있으며, 인간을 위한 세상은 인간이 살고 있는 지금에 이미 현시되고 있다고. 뚫어지게 바라보고 지독하게 질문을 반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만이 ‘잊지 않겠다’라는 말을 아무 것도 아닌 소리로 남겨두지 않는 방법이다.”


그러면, 새로운 국내 세상 - 한국사회 - 은 어떻게 만들어야하고, 아무 실익이 없는 외교와 정책만 가진 현 정부로 세계정세는 어떻게 대응할 수 있나. 봄호는 ‘세계서사’라는 큰 주제와 질문에 대해서도 여러 분야의 의견을 들려주니 고마울 뿐이다. 나처럼 매일 화만 내는 이들의 담론과 의견은 충분히 들었다. 말하고 듣다 서로 지쳤다.  


‘질문’도 현황도 정세도 이슈도 “어떻게 서사화할 것”인지 질문하는 글이 흥미롭다. 그걸 잘 못하니, 논의와 대화와 협의로 가지 않고, 소리 지르고 화내다 그만 두고 만다. 어떤 주제이든 역사적 흐름을 모르면, 맥락도 필요성도 이해하지 못하고 말꼬리나 잡게 되니, 박노자 교수에게는 매번 역사적 팩트체크와 통계를 통해 한국을 배운다. 누가 외노자인지 헷갈린 지가 오래다. 감사하고 부끄럽다. 


“한국처럼 여론조사 응답자의 81%나 중국에 대한 ‘비호감’을 나타내는 서구사회는 어디에도 없다. 마찬가지로 20, 30대 남성의 5.5%만이 페미니즘 지지에 동의한다는 자유민주주의 국가 역시 한국 이외에 없다. 최근 대구에서 일어난 이슬람사원 건설반대운동은 세계적으로 봐도 상당히 높은 수위의 이슬람 혐오 현실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 인당 탄소배출량은 세계평균보다 거의 2배나 많다. (...) 주류 진보정당의 경우에도 기후나 난민 문제 등은 결코 의제의 중심에 있지 않다. (...) 이스라엘 등 최악의 인권침해를 감행하고 있는 국가를 포함해 한국산 무기의 해외 수출에 대개 침묵하거나 아예 ‘K-방산의 성공’을 같이 기뻐하기도 한다.” 


상상해보는 진짜 봄은 아닌 듯해도, 어제부터 내리던 비는 그친 후 오랜만의 햇살은 반갑다. 늘 종합선물세트 같은 계간지를 한참 골라 읽었지만, 소설 여러 편과 시가 남아있다. 대학생이 되고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한자도 빼놓지 않고 읽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함께 살아남은 친구 같다. 여전히 문해력은 부족하지만, 다양한 견해를 함께 만나는 기회 자체가 요즘엔 더 소중하다.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무능력과 혐오가 현재와 미래를 꼼짝없이 속박하는 하나의 서사처럼 느껴질 때, 우리에게는 반드시 ‘다시 쓰는 방법’이 필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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