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기 때문에
나태주 지음 / 김영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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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시인의 에세이, 오랜만에 아무데나 펴보기, 내명(內明)... 밖보다 안이 밝다. 요즘은 안팎이 어두침침하다. 매일을 살다 문득 기억이 나면 근육을 움직여서 웃어보려 한다. 화를 내는 일도 버겁지만, 삼키기만 하면 몸이 굳는다.





그러니 고운 제목의 책이 반갑고 고맙다. 가만히 천천히 읽다보면 시인의 모습이 그려지고, 풍경이 떠오르고, 병이 나서 오른 열처럼 뜨겁던 기분이 식어간다. 비염이 심해서 긴 산책이 어려워졌는데, 책 속 산책을 떠나기에 맞춤한 작은 길들이 문장들 속에 여럿이다.


“애당초 글은 사람을 좋아하고 세상을 사랑하고 자연을 아끼는 데서 출발한다. 정말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좋은 글이 나오지 않는다.”


겨우 반백년 산 독자이나, 몸이 다치고 사고에 휘말렸던, 기적처럼 운 좋게 도와준 분들이 없었다면 죽었을 고비는 있었다. 깨달음을 얻어 해탈하고 현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내게 있는 조그마한 좋은 것들은 그런 경험들로부터 배우고 변한 것들일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지혜가 모자라 어디로도 발걸음을 옮길 수 없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버티는 근력이 더 필요하다.


“몸을 한번 크게 다치고 나면 날마다 순간마다 몸이 아프기 마련이다. 그래도 나는 삶이 안겨주는 보람과 기쁨으로 버티며 온갖 일을 하고 있다.”


“나이 팔십이 가까워서야 겨우 책이 팔리고 내 글을 알아주는 독자가 생겼다. 그것도 어린 독자가 많이 생겼다. 이거야말로 내가 마이너임을 자처하며 오래 견뎌온 결과요 축복이라 생각한다.”


수많은 이들이 함께 좋아하며 외우는 시가 있다는 건, 순간 삶이 해사해지는 기분을 들게 한다. 나는 광화문 현판에 오래 머문 시도, 기억 속에 오래 머문 시도, 필사와 인용으로 온라인에 번지는 시들도 좋았다.





“한동안 시를 썼다고 시인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시인은 현재형으로 시를 쓰고 있어야 한다. (...) 하루도 시를 생각하지 않거나 시를 읽지 않고 넘긴 날이 없다.”


요즘엔 슬픈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뭘 이겨내려고 무엇을 해봤다거나, 진료 상담 내용이 좋아졌다거나. 힘들지 않은 삶이 있었냐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애쓰는 이들이 조금 덜 힘들게 살 수 있어야 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시인의 당부 같은 말처럼 ‘오래 살면 전반부 서툰 인생이 보완될까.’ 아직 너무 숨 가쁘게 살아서 문제이니, ‘멈추고 줄여야 할까.’ 억지로 몸을 일으켜 ‘겉치레’라도 대충하고 감정을 삼키며 멀쩡한 척 사는 일을 멈춰야 하는 걸까. 


버티고 선 익숙해서 더 버거운 일상의 이야기와 다른, 시인의 질문들이 그래도 좋다. 누군가와 함께 나눠보고 싶던 이야기,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싶던 이야기, 나이가 얼마든, 인생과 소망과 별과 꿈과 희망과 사람으로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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