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을 꿈꾸다 - 우리의 삶에서 상상력이 사라졌을 때
배리 로페즈 지음, 신해경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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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신으면 죽을 때까지 멈추지 못하고 춤을 추게 된다는 빨간 구두처럼, 읽기 시작하니 영원히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다. 미사여구가 없는 마법서 같다. 과학자의 관찰기에 더 가까운 문장들인데, 한없이 공교工巧한 판타지 같은 현실 세계로, 짐작할 수 있으나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없었던 세상으로 안내해준다. 


“나는 밤 산책을 하면서 절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이 외딴곳에서 마주친 예상치 못한 생명의 풍성함 때문에, 숨결처럼 한숨처럼 땅을 내리덮는 고요한 북극의 빛 때문에,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새들과 둥지에 든 생명의 증거들을 향해 슬며시 고대를 숙이곤 했다.”


생태계의 다양성, 인간 문화의 다양성, 사회의 다양성이란 표현을 자주 썼지만, 실체적인 경험은 부족한 독자에게, 600쪽이 아쉬울 정도로, 놀라운 실체 규명의 기록처럼 실존하는 생명과 땅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책과의 조우가 과분한 행운처럼 감사하다. 얼음과 물빛으로만 떠오르던 북극이 한없이 다채로워진다.


“내 관습적인 인식으로 보자면 말도 안 되지만, 한밤중에소 태양이 빛나고 있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너그러운가. 수 세기 동안 이어진 겨울의 증거를 그처럼 웅변적으로 드러내는 땅이 사방으로 넘쳐흐르는 연민이라니.”


모르기 때문에 오래 유지한 북극에 대한 선입견은, 이 책을 읽는 동안 한편으로는 인간의 삶과 북극을 마침내 연결 짓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이 부재한 본래의 땅과 생명의 모습을 더 강렬하게 보고 싶다는 생각에 차츰 변해갔다. 


인간의 제외한 다른 생명의 삶이 생존이라면, 주류 문명사회의 인간의 삶은 위험천만하고 무례한 파괴력에 다름 아닌 욕망으로 느껴진다. 인간의 삶은 너무 요란하고 파괴적이고 낭비적이고 더럽고 쓰레기를 많이 남긴다.


어쩌면 이미 대부분의 인간은 ‘자연’의 일부가 아니며 미리 회복해야할 것들을 회복하고 새롭게 배우지 못한다면 결코 자연의 일부가 될 수 없을 거란 생각을 한다. 그건 자연의 지배력을 벗어나길 원했던 인간의 소망이 이루는 과정에서, 그 무엇도 자제할 수 없는 인간 속성을 따라 자멸하는 조건마저 만들어온 부작용의 결과일 것이다.


“인간도 다른 생명체들과 함께 같은 생물계 안에 살고 있지만 (...) 같은 진화 법칙의 적용을 받는 것은 아니다.”


존재하지 않는 고향과 가족이라는 이상향을 그리는 망상처럼, 어느 곳에 아직도 ‘순수하고 본원적인’ 형태로 남은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인간의 삶의 방식은 이제 마지막 숨을 가쁘게 내쉬고 있을 것만 같다. “경제적 능력만 어마어마할 뿐 지역에 대한 지리적 감각은 형편없는 사람들의 손에 권력이 점점 더 집중되고 있”기 때문에.


지구의 많은 장소들에서, 우리는 인간에게 호의적이지 못한 변화와 변동을 목격한다. 작년보다 올 해가 더 우울하다. 좌절은 가깝고 절망은 쉬워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은 경고를 더해 우울을 깊게 하는 내용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지의 존재’에 대해, 그 무게감을 진실로 느끼며 알아보는 성실하고 아름다운 증언이다.





지상 생물인 우리가 대지를 어떻게 상상하고 있는지, 욕망과 지식에 대해 어떻게 사유하고 성찰할 수 있을지, 시사적인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깊이 다룬다는 건 무엇일지, 괴로움 속에서 뜨거워지는 머리를 견디며 아파했을 질문들을, 저자와 학자들과 함께 책 속으로 긴 여행을 다니며 ‘자연스럽게’ 배워본다.





아홉 번의 문화인류학 여행이 끝나자, 북극, 해빙, 카약, 에스키모, 물범, 북극곰, 수많은 새들, 별빛, 바다, 눈, 대기. 낮과 밤, 태양... 책에서 만난 존재들이 서늘하고 부드럽게 물어온다. 인간이 알게 된 “길고 단호한 진화의 길”이 무엇이었는지, 인간이 믿는 편견과 선입견과 해로운 ‘사고와 지식들’은 무엇인지를. “대지”를 이용만 하고, 무엇이든 착취하려는 “욕망”은 무엇인지, “부유해진다”는 것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고 배운 것은 아니다. 배웠다고 맞게 사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더 생각하고 기억해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 인간이 경험하는 반목과 절망과 지독한 쓸쓸함을 떠올린다. 이 책에서 만난 ‘자제’, ‘생태계의 생물학적 요구’, ‘비판적 지성’ ‘인류가 열망해 온 지혜’. ‘실질적인 희망’, ‘감사’... 를 생각해본다.


“물리적인 증거가 동일하다고 해서 모든 관찰자가 동일한 세계를 그리는 것은 아니다” 1936. 언어인류학자 워프(Benjamin Who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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