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악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송예슬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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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도 아닌데 논픽션 소설이란 표현은 여전히 좀 헷갈린다. 매니악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과학사와 세계사를 여행하는 느낌일까. 죽음이 삶인 것처럼 붕괴 역시 창조인 흥미로울 그런 시간들.

 

이상한 작품이다. 한 문장도 지루하지 않았다. 읽을수록 심장이 더 거세게 뛰었다. 공포스러울 정도로 매혹적이고 수다스럽고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상황들에 점점 기분이 들떴다.

 

결국 기술은 인간의 배설물일 분 대단한 무언가로 간주되어서는 안 되거든. (...) 하지만 기술은 갈수록 빠르게 진보하면서 불가피한 특이점으로, 우리가 아는 인류 역사가 더는 지속되지 못할 티핑 포인트로 나아가고 있는 듯해.”

 

비뚤어진 파괴력이 위험을 초래하는 게 아니야. 위험은 원래부터 내재해 있지. 진보를 치유할 방법은 없어.”

 

책임질 일도 별로 없고, 홀가분한 혼자로 살 수 있었던 20대처럼.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고, 우정과 호의와 가치를 굳건히 믿었던 그때처럼. 가능성만으로도 마음껏 저질러 볼 수 있었던 시절처럼 내용에 몰입하였다.

 

어쩌면 예상치 못한 친족 살인으로 시작하는 내용에 쇼크를 받은 상태로, 어둑어둑하고 내재적인 섬뜩함을 품은 인물들을 만나며 더 놀란 상태가 되어 계속 읽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거침없고 솔직해서 두렵고도 아름다운 존재들.

 

이를테면 세상을 날려버릴 수도 있는 무언가를 다루게 되는 상황이 갑자기 벌어졌을 때 우리는 한낱 어린아이일 뿐이었다.” - 존 폰 노이만

 

우리는 세상이 예전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몇몇은 웃었고 몇몇은 울었으나 나머지는 침묵했다.”

 

매니악이란 제목이 부족한 느낌이 드는 어마어마한 내용이다. 천재들이란 고혹적일 수도 있지만 거부감이 드는 경우도 있는데, 이 작가는 자신의 작품 속에 초청한 모든 인물을 더 특별하게 만든다. 화려한 착장으로 눈을 멀게 한다.



 

작가의 1차 언어 그대로 읽어보고 싶은 문학이다. 번역이란 걸 잊고 읽었으니 아무 불만은 없지만, 그럼에도 더 친밀해지고 싶은 무척 끌리는 매력이 가득하다. 전작을 읽었을 때와 왜 이리 다른 후감(後感)인지.

 

계속 느낌만 나열하는 감상문이지만, 이 책을 문해하려면 다양한 학문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온갖 지적인 내용들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짐작만 하는 듯해 조금 서러웠지만 번번이 패배해도 즐거운 게임 속에 머무는 기분이 즐거웠다.

 

등장하는 천재들의 전공을 알아야 읽을 수 있는 일차원적인 글은 아니다. 바로 오늘 생체로봇을 만들어내었단 발표를 들었기 때문에, 과학의 현실로만 보자면 존 폰 노이만과 물리학, 논리학, 수학, 맨해튼 프로젝트, 컴퓨터, 인공지능 등은 이미 클래식한 지식정보 같기도 하다.

 

그러니 지루하고 심심해서 지겹고 졸린 분들은 이 책을 펼치시길 바란다. 뇌신경망에 스파크가 파직파직 이어진다. 천재를 소재로 다룬 문학 - 과학, 수학, 논리학, 역사학, 철학, 심리학을 두루 활용하고 연결해서 - 이라고 하지만, 작자 자신이 가장 놀라운 천재인 듯!

 

2-3시간 정도의 영상으로 다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이 위협적인 존재들이 살아 움직이는 영화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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