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패트릭 브링리 지음, 김희정.조현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모르는 세계, 직업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에세이 읽는 것을 좋아한다. 모든 경험이 고유하고 특별했다. 그리고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경비원의 경험과 시선과 그 이상이 담긴 이 책에 몹시 설레고 두근거렸다.

 

나는 경비원이 서 있기에 좋은 구석으로 가서 자리를 잡는다. 그러면서 미술관에서는 눈을 감지 않아도 느끼고 싶은 것을 느낄 수 있음을 깨닫는다.”

 

부제에서 한 남자는 숨어버렸다고 한다. 사랑하는 책들이지만, 현실이 버거워서 책 속으로 숨어버리는 날들이 많아지는 나는, 그의 사연이 미술관과 예술 작품보다 더 마음이 쓰였다.

 

상실감과 슬픔은 가벼이 다룰 수 없는 비통과 애도이고, 육체는 무력감에 빠진다. 아니 그는 그래도 시간을 보내는 일을 찾았으니 완전한 무력감은 아니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거대한 장소가 마련해주는 숨을 수 있는 장소와 여지가 내게도 안도가 되었다. 스스로를 위로하고자 한 이의 행보가 다른 많은 이들에게 위로가 되어 닿는 과정이 잔잔하게 아름다웠다.

 

미국 이민을 가서 뉴욕에서 살고 있는 어릴 적부터의 오랜 친구가 그리워지기도 했다. 반짝이고 화려한 것들보다 이제는 한국에서 찾아보기 어려워진, 레코드 가게, 싸구려 식당, 그리고 워싱턴 스퀘어의 분수대로 이루어진 도시가 궁금해졌다. 업타운의 소란함보다 숨기 좋은 공간들이.

 

졸업 후 뉴욕 중심가의 고층 빌딩에서 화려한 직장 생활을 시작했지만 정작 나에게 아름다움, 우아함, 상실 그리고 어쩌면 예술의 의미를 가르쳐 준 것은 그런 조용한 공간들이었다.”

 

2008년 미술관 일을 시작하며, 그가 향하는 곳들을 함께 따라가 보았다. 2백만 개가 넘는 유물을 소장했다니 평생 보아도 못 볼 예술 작품들의 산적함에 짧은 인생이 더 짧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무도 말을 거는 사람이 없는 근무지, 문을 열기 30분 전, 램브란트, 보티첼리, 디에고, 고야…….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는 이집트관이었다. 시간은 일방향성을 지니고 있다고, 직선으로 흐른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죽음이 삶이고 과거가 현재이고 미래라는 걸 자연스럽게 이해하는 나이가 되니 영화 <컨텍트>의 시간처럼 내가 보는 시간도 모두 순환한다.

 

이집트인들은 시간에 대해 우리와는 다른 관념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시간을 네해’, 즉 수백만년 간 이라 불렀고, 그것의 본질은 화살처럼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원과 같은 순환이었다.”

 

그가 입은 미술관 경비복, 푸른 제복 아래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수많은 사연들은 사람이 각자 어떤 고군분투를 하며, 세상에 자신만의 색으로 반짝임을 남기며 고유한 무늬를 새기며 사는 지를 상기하게 한다.

 

관람객으로 미술관을 방문해서 보고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이해가 생긴다. 타인의 것은 타인의 것들이다. 우리는 대개 무지와 기우에 근거하며 남을 판단한다. 제복을 입고 있어도 각자가 가진 꿈과 취향은 가려지지 않고, 모두의 경험은 여전히 고유하다.

 

인내하기 위해 노력하고, 친절하기 위해 노력하고, 다른 사람들의 특이한 점들을 즐기고 나의 특이한 점을 잘 활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관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상황이 좋지 않더라고 적어도 인간적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

 

스산한 기분이 들고 여러 복잡한 생각에 불안해지는 겨울에는 아름답고 경이로운 이야기가 더 좋아서, 읽는 동안에는 마음이 놓이고 기분이 편안해졌다. 더 아름다운 건 예술인지 삶인지 잠시 생각하다, 애초에 그런 구분과 비교는 불필요하게 느껴졌다.

 

위대한 그림은 거대한 바위처럼 보일 때가 있다.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냉혹하고 직접적이며 가슴을 저미는 바위 같은 현실 말이다.”

 

단 하나의 이데아도 정답도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경험하며 나는 여러 종류의 아름다움을 만났을 것이다. 표현한 언어가 없거나 부족해서 뭉쳐진 감정들로 기억하지만, 종류가 다름은 알 수 있다.

 

이 책은 참 아름다운 책이다. 짐작을 많이 벗어나는 책을 좋아하는데 에세이라서, 미술관이라서 이렇겠다고 생각한 것들이 모두 낯설고 새로운 내용들로 대체되었다. 무엇보다 가만히 사유하게 되는 순간이 늘어나는 깊은 글이다.

 

삶이란 단순함과 정적으로 이루어져 있을 때도 있지만, 군말 없이 살아가며 고군분투하고 성장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것이기도 하다

 

냉소가 차오르기도 하는 시절, 우리의 삶도 우연도 사연도 예술도 이렇게 신비롭고 경이롭고 아름다울 수 있지, 하는 오랜 감동을 소환해준다. 앞으로 내가 조금 더 친절하거나 다정한 표정과 말과 행동을 하는데 이 책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만들어지는 운율을 깨닫는 것은 내가 자라서 어떤 어른이 될 것인지를 깨닫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야기, , 아름다운 모든 존재들을 만나러 여행을 떠나고 싶어지는, 멀리 보내는 눈길이 시큰해지는 밤이었다. 세상은 서로 섞이기를 거부하는 세밀한 부분들로 가득한 것이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