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탈로니아 찬가 에디터스 컬렉션 16
조지 오웰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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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번 다른 번역과 판본으로 만나도 여전히 서늘하고 뜨겁게 놀라는 작품들을 쓴 존경하는 작가. 기분 좋은 우연처럼 아주 오랜만에 그의 작품들을 다시 만날 기회가 거듭 생긴다.

 

문예출판사의 에디터스컬렉션 <카탈로니아찬가>는 사진들이 먼저 눈을 사로잡는다. 기억 속 조각들로 남은 문학을 새롭게 읽고 채우고 숙고해보는 의미 깊은 기회가 감사하다.

 



 

1936년 발발한 스페인 내전을 다루는 이 작품을 읽는 동안 2024년 지구에도 전쟁 상황과 확전 소식이 들려왔다. 현실로 인한 불안감이 문학이 전하는 비극보다 커서, 문학이 전달한 경고가 현실을 직시하게 해서 기분이 무거웠다.

 

영국 유학 중에 나는 한 명의 카탈로니아 출신 친구를 만났고 켄 로치 감독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함께 보며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제국주의적이고 세계대전이라는 참상에 대한 숙고가 없는 듯한 축구팀에 붙는 수식어들 - 스페인의 무적함대나 독일의 전차군단 등 - 이 무척 불편해졌다.

 

다른 한편으로는 무기 들고 죽이는 전쟁 대신 공을 뺏는 경기를 하는 것이 더 나은 문명이고 평화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20세기에 나는 그렇게 전쟁의 지난 과거의 방식이었다고, 다시 반복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게으른 낙관을 했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나, 근래에 나는 인류 문명에서 전쟁이 없었던 시간이 거의 없었다는 것을 기록으로 만났다. 그래서 지난 역사의 기록으로 읽은 <카탈로니아 찬가>를 다시 만난 것이 다행이다. 이제야 남의 일이 아닌 것처럼 절감하며 읽어보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떤 점에서 문명은 퇴행한 듯도 하다. 전쟁의 이유와 분위기, 참전하는 이들의 태도는 현대의 전쟁과 다르고, 그 점이 우리가 도착한 문명의 현실을 더 잘 보여준다. 실패하고 패배했지만, 이상과 대의와 기강이 있고, 그것을 지키려는 저항이 부럽고 빛난다.

 

문명 생활에서 사람을 움직이는 일반적인 동기 중 대부분, 즉 속물근성, 재물 욕심, 윗사람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평범함 계급 구분도 돈으로 더렵혀진 영국의 분위기에서는 거의 생각도 할 수 없는 수준으로 사라졌다. (...) 누구도 타인을 소유하지 않았다.”

 

자신이 뭔가 낯설고 귀한 것과 점했음을 깨달았다. 냉담이나 냉소주의보다 희망이 더 일반적인 곳이었다. (...) 대부분의 나라에서처럼 사기극의 상징이 아니었다. 우리는 평등의 공기를 호흡했다.”

 

계급 없는 사회를 꿈꾸고, 자본주의의 인적 자원이 아닌 사람다운 존재가 되려고 애쓰는 장면들이 그렇다. 그런 제언과 고민도 사라진 21세기에 우리에게 허용된 추구는 돈이 없으면 적게라도 쓰라고 속삭이는 소확행이 전부인가 싶어서.

 

물론 지향하는 바가 무엇이건 다른 선택지 없이 전쟁만 남은 상황은 최악이다. 희생은 말할 것도 없다. 다만 어떤 방식이든 죽고 죽이는 인류 문명의 방식이 멈추지 않은 것이라면, 2024년의 인류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지켜낼 전선을 인지하고 있는 것인지 자문해본다.

 

지키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인간답게 산다는 건 무엇인가, 인간답게 행동하고 품위를 지킨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의심, 두려움, 불안, 감춰진 증오가 섞인 분위기는 왜, 어떻게 생겨나고 퍼지는가, - 조직, 자원, 자본 - 을 가진 세력들은 어째서 논쟁과 토론 대신 공작과 선전선동으로 상대를 죽이려드는가, 파시스트 세력은 어째서 손쉽게 기세등등해지는가.

 

역사와 문학의 경고가 적지 않음에도 우리는 왜 참담하고 어리석은 결정을 반복하는가. 파괴와 살상에 더해 탄소를 펑펑 배출하는 팔레스타인과 가자 지구에 퍼부어지는 전쟁이라는 이름하에 자행되는 학살을 2024년의 인류는 언제 멈출 수 있을까. 멈추지 못하면 지금도 매일 3천만 톤씩 녹아내리는 빙하로 인해 우리가 마주할 재앙은 무엇일까.

 

전쟁의 가장 끔찍한 면 중 하나는 모든 전쟁 선전, 모든 구호와 거짓과 증오가 언제나 싸우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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