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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듣는다
루시드 폴 지음 / 돌베개 / 2023년 12월
평점 :
하얗고 보드랍고 말간 함박눈 같은, 루시드 폴의 음악 같은, 표지의 책이 도착했다. 기분이 말랑해진다. 모두가 듣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이 아니라도 모두가 목소리를 가졌고 모두가 서로를 듣는다고 생각해본다. 귀를 기울여 읽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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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을 전공하고 나서 오랜 친구들은 내게 세상이 어떻게 달라 보이냐고 물었다. 신비로운 모든 것이 제거된 세상이냐고.
무지개가 파장이 다른 빛의 산란이며, 협소한 인간의 시각에 보이는 스펙트럼이라고 해서 무지개가 싫어지지 않는다. 심장을 울리듯 깊이 닿는 세상 모든 존재의 고유 진동수가 공기 매체를 건너 온 전하의 떨림과 울림이라고 해서 설레지 않는 것은 아니다.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알게 모르게 서로를 울리고, 함께 떨리며 살아간다. (...) 그것은 음악이자 춤이다. (...) 공연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함께 춤을 추는 것이다.”
너무 자주 너무 많은 문장들에서 멈추고 떨려서 조금 조금씩 읽었다. 그만큼 연휴가 길어지고 기뻐진 느낌이 좋았다. 떨림과 울림을 통해 음악을 전달하는 저자의 문장은 피아노의 현이, 현악기의 활이 기록한 음표처럼 아름답다.
“음악은 세상의 떨림을 전하는 길이다. 음악을 연주하고 들을 때, 우리는 모두가 함께 춤을 춘다. (...) 우리는 모두가 음악의 일부이며 전부다.”
나는 그가 전하는 음악을 문장 속에서 듣다가 창밖의 눈처럼 어딘가를 오래 떠돌기도 하고, 추위를 잊고 잘 보이지 않는 먼 곳을 한참 쳐다보며, 집 밖의 다른 소리들에 마음을 기울여보기도 했다.
그의 과수원에서 음악을 소리비료로 들으며 자란 나무와 귤을 탐내며, 오랜 친구가 보내온 제주 감귤을 갈랐다. 세상의 많은 소리들이 윤회를 거쳐 이렇게 아름다운 빛의 실체로 내게 도착했다고 생각하니, 향기도 음악이 된다.
“세상에 존재하는 극단은 대부분 인간이 만든 것이다. 인간은 극단적으로 단단한 물질을 극단적으로 날카로운 도구로 다뤄 극단적인 소리를 만들어낸다.” <Doloroso>*
* 라틴어 ‘고통스러운’. 루시드 폴이 출품한 오브제 작품 제목. 앨범 <Being with>에 수록.
진귤나무와 협업한 멜로디 <Moment in Love>는 <Dancing with Water>에 실려 있다. 나무가 만든 곳, 나무가 아니었다면 태어날 수 없었던 음악, 나무가 준 멜로디를 인간을 질서로 다듬은 결과물. 책 속에서 그의 음악을 배운다. 음악가로서 그가 자리매김한 장소와 관계를 본다.
분류하고 구분하고 경계하고 격리하고 차별하고 죽이는 과정 속에서 인간은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매일 외로워서 죽어간다. 차분하게 쓰였지만, 낡은 인과와 질서와 형식과 계획을 따르지 않는다는 담대한 선언문 같다. 나는 조용히 크게 놀랐다.
그렇게 ‘무언가가 되어버리는’ 것이 그가 하는 일이라면 무엇도 되지 못하는 내가 하는 일은 무엇일까. 무슨 흐릿한 망상 속에 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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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eva Slare and her family of four
make beautiful beach art
inspired by nature in Devon, 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