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는 마이너스 2야 - 제21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ㅣ 사계절 1318 문고 141
전앤 지음 / 사계절 / 2023년 9월
평점 :
이 작품 제목의 숫자와 연산이 어른들의 삶에 만연한 어떤 폭력성을 나타내는 듯하다. 자리매김이 어려워 투명하고 싶거나, 차라리 자신을 마이너스 존재로 여기는 아이들의 풍경이 미안한 것이 많은 반백의 독자를 쓸쓸하게 한다.
청소년 문학에 관한 꾸준한 관심은 일차적으로는 십 대 아이들 두 명이 읽어주기를 바라서이지만, (나이만)어른 독자인 나는 함께 읽을 때마다 어린 내가 당시에 이해할 수 없었던 시간들을 문학으로 만나고 자주 위안을 받는다.
초등학교 6학년의 초겨울, 단체사진을 찍어 졸업 앨범을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담임이 찾지 못한 누락된 사진의 그 아이는 여러 날 결석이었다.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와 친구 한 명을 지목한 담임은 그 아이의 집에 가서 쓸 만한 사진을 받아서 제출하라고 했다.
한 반에 50명이 넘은 아이들이 생활하던 80년대라서, 나는 그 아이 이름만 겨우 알았다. 대화를 나눈 기억도, 재밌는 추억도 없었다. 낯선 이의 집에 처음 가는 길은 어색했지만, 어른들 업무 같아서 조금 설렜다.
대문 앞에서 이름을 부르자, 막 감은 머리를 급히 수건으로 말리면서도 놀랍도록 환하게 웃으며 그 아이가 나왔다. 반겨줘서 사탕을 입에 문 듯 기분이 달콤해졌다. 앨범을 함께 넘기다 적당한 사진을 찾아 어둑해지는 길로 나섰다.
내 기억은 그게 전부다. 반가웠던 잠시의 조우. 하지만 그 아이는 등교하지 않았고, 어느 날 책상과 걸상이 치워졌다. 약을 먹고 자살을 했다는 이야기, 담임 징계 소식과 그 아이네 가정사가 쓰레기 태우는 매연처럼 번졌다.
“어제까지 한 교실에 있던 애가 죽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는 모르고 있었다. (...) 나는 내 마음을 알 수 없어서 좀 답답했다.”
나는 함묵했다. 함께 간 친구에게도 묻지 못했다. 아무리 기억을 뒤져봐도 못된 짓은 하지 않았지만, 아무도 나에게 묻지 않았지만, 하염없이 그 시간을 돌이켜보았다. 찾아간 것 자체가 잘못이었을까. 무언가 말실수를 했나.
“웃으면서 자신과 싸우는 건 너무 외로워.”
당시 내게 하루는 즐거운 추억을 만들기에 충분히 길었고 모든 계절이 즐거웠다. 그래서 죽음도 모르고 아픔도 못 보았다. 함께 웃은 잠깐은 친구가 되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그 아이는 도움이 필요했어도 내게 묻지는 않았을 것이다.
“죽을 때 말이야. (...) 몸과 달리 마음은 더 무거워져. 안 보이던 것들이 다 보이거든.”
읽기 전에는 혼자라서 힘든 아이들이 서로를 발견하고 따뜻하게 채워가는 이야기일 거라고, 게으른 어른의 너무 빠른 선입견을 가진 채 행복한 결말을 예상하며 느긋하게 읽었는데, 죽음에 대해서 죽은 친구에 대해서 오래 생각했다.
집을 찾아가기 전에도 어울려 이야기하고 웃을 기회가 있었다면. 혼자가 아니라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느낄 사소한 기회가 있었다면. 그날 사진만 찾아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더 나누며 웃다가, 내일 학교에서 만나자고 했다면.
“꿈은 다시 이어지지 않았다.”
작고 얇은 책 속에서 오래 전의 나를 보았다. 갑작스런 부재가 죽음이라고 배운 어린 나. 상상 속에서 그 아이에게 이 책을 선물해본다. 마주 웃으며 손의 온기를 느끼며 진짜 친구처럼. 내가 받아온 사진이 졸업 앨범에 없는 친구의 명복을 그렇게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