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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찬란하고 자주 우울한 - 경조증과 우울 사이에서, 의사가 직접 겪은 조울증의 세계
경조울 지음 / 북하우스 / 2023년 12월
평점 :
놀랍게 솔직한 글이다. 문장은 건조할 정도로 명료하다. 포장과 장식은 물론 감정도 최대한 절제되어 있다. 정신질환에 관심이 많고 상담과 복약 경험이 있는 독자로서 과잉이 없어서 고마울 정도로 읽기에 편했다.
동시에 제대로 배우는 정확한 의학 지식도 감사했다. 저자는 의사다. 전문의다. 덕분에 마음 편히 신뢰하며 읽고 배웠다. 우울증과 조증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양극성 장애 중 경조증*, 그 중에서도 2형 양극성 장애**는 처음이다.
* 조증보다는 가벼운 증상
** 1형만큼 심하지 않은 대신 재발이 잦다. 덜 아픈데 더 자주 아프다. 통계적으로 100명 중 2-3명이 평생 한 번은 양극성 장애를 경험한다. 실제로 초기에 절반 이상이 우울증 진단을 받으며, 제대로 진단받는데 평균 십 년 정도가 걸린다.
“상태를 부인하고 현실로부터 도망 다니는 십 년 동안, 내 증상이 양극성 장애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증거를 찾으려 무수히 애썼지만 매번 실패했다.”
의사도, 혹은 의사라서 더욱 수용이 어려운 세월이 길었다. 그 오랜 시행착오를 장기상담과 복약, 심리 상태에 대한 분석과 고찰, 부모와의 일차적 관계의 분리와 성장, 연애와 결혼, 직장 생활 등 다각적으로 접근하고 수용하고 바꿔 나간 이야기들로 솔직하게 담았다.
세심한 묘사와도 같은 증상에 대한 설명과 사례 덕분에 나는 경조증이 어떤 모습으로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선명하게 본 듯 이해했다. 이전에 알던 이들 중 이해할 수 없었던 면면이 어쩌면 ‘증상’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부디 필요한 도움을 찾았기를 바란다.
저자가 겪은 시행착오 중에는 누구나 빠지기 쉬운 내용도, 잘못 알려지고 강요된 내용도, 알고도 저항을 못하고 심한 부작용으로 귀결되는 위험성이 있는 방법도 있어서, 이런 사례를 읽고 알게 되는 것이 정말 유용하다.
“우울할수록 가짜 자존감을 높이는데 몰두했다. (...) 매일 그렇게 애쓰는데 인생을 잘못 살고 있는 것 같았다. (...) 나는 또 길을 잃었다.”
특히 사는 일은 고되고 시간을 늘 부족하고 의존과 중독에 관대한 한국 사회에서 알코올 문제에는 경고가 필요하다. 알코올 유발성 탈억제는 나도 종종 사용하는 손쉬운 유혹이고, 고기능 알코올 중독자*는 생각보다 흔하다.
* 전형적인 알코올 중독자와 다르게 사회적 성취를 유지하며 원만한 대인관계를 이어가기에 주변 사람들은 좀처럼 그들의 음주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다. 스스로도 알코올 중독을 강하게 부인하는 경우가 많다.
가족도 친구도 연인도 사회도 내가 기대하고 바라는 반응을 해주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다. 편견도 문제지만 몰라서도 그렇다. 저자가 타인과 외부에서만 인정과 위로를 구하지 않고 글을 쓴 것이 무척 다행이라 안도가 된다.
“내가 쓴 글을 다시 읽는 과정은 나에 대해서 알아가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 ‘나 사용법’을 쓰는 기분이랄까. (...) 있는 그대로 느낀 바를 쓰는 건 생각보다 훨씬 큰 힘이 있다.”
죽지 않기 위해, 살아야 해서 글을 쓴다는 저자들을 만났다. 쓰기란 ‘나와 나’ 사이의 거리를 늘려줌으로써 비로소 내가 나를 알아가고 받아들이도록, 내 반응과 행동을 ‘볼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런 시간이 쌓여 마침내 “훨씬 살 만해졌다”는 문장이 기쁘다.
중요한 사안을 무겁지만은 않게 읽고 배울 수 있는 소중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