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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빡이는 소녀들
스테이시 윌링햄 지음, 허진 옮김 / 세계사 / 2023년 11월
평점 :
데뷔작이라니 놀랍다. 글을 읽는데 자연스럽게 영상이 펼쳐지는 기분으로 스토리에 몰두하게 된다. 이미지가 구체적이고 선명할수록 인물들이 겪는 심리적 고통과 아픔을 생생하게 공감하게 된다.
“집에서 무사하지 않다면? 안전하지 않다면? (...) 당신의 집에서 그 모든 일이 시작되었다면 어떨까?”
장르소설에 대한 구체적인 편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문장들은 은유와 비유를 세심하게 활용하고, 깊은 통찰을 거쳐 심리를 다독이는 사유의 결정체처럼 아름답고 예리했다. 인물이 평생을 걸쳐 고민과 이해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과 잘 어우러진다.
어린 아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지독한 악몽을 만나게 되는 설정이 많이 아프다. 더구나 현실에서 자주 접하는 2차, 3차 가해들. 성인이 된 주인공의 모습이 과거와 교차된다. 그가 표면적으로는 전문직을 가진 성인이 된 상황이 우선 안도가 된다.
“우리 업계는 클리셰로 먹고 산다. (...) 하지만 클리셰가 존재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진실이기 때문이다.”
충격적인 만큼 매력적인 설정과 어설프지 않고 집중된 스토리 전개, 입체적인 면모가 부족하지 않은 인물들의 관계는 끝까지 몰입을 돕는다. 누구도 불행하지 않은 반전을 바라게 읽었지만, 인간의 심리도, 행동의 이유도, 삶의 진실도 호락한 것이 없다.
“나 같은 사람이 가득했기에 나는 덜 외롭고 더 평범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남성에게 구원받는 허약한 여성 캐릭터가 아니라서, 사적 복수로 치닫는 열기가 아니라서, 누구나 각자의 입장에서 애쓴 노력들이 없지 않아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할 수 없었던 오해와, 제어할 수 없었던 비극적 추동에도 쓸쓸한 납득이 가능했다.
물론 이해되는 면이 있다고 처벌과 비판이 면제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영민한 작가는 독자가 그런 불편한 잔상을 오래 갖지 않도록 인물들을 통해 판단과 행동이 미친 연장된 비극과 범죄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사과하며 마무리한다.
“폭력은 순환한다.”
아무도 바라던 모습대로 행복해지지는 않은 듯해 서글프지만, 다른 한편 모두가 애쓴 노력이 더 큰 비극을 막고, 상처를 조금이라도 봉합한 것처럼도 느껴진다.
용의자처럼 느낀 누구도 나는 완전히 미워지지 않았다. 다만, 혼자서는 제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도움을 구하고 받을 시스템이 부재하거나 모자란 것이 작품에서도 현실에서도 늘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