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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수 있는 전쟁 - 국제 정상급 정치인이 직접 경험하고 분석한 미중 패권 경쟁
케빈 러드 지음, 김아영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11월
평점 :
분단된 휴전국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늘 하지 않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다른 곳의 전쟁 소식을 들으며, 설핏 드는 가능성만으로도 두려워진다. 책 제목을 보고도 무서웠다. 피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절대로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다. 누구의 전쟁도 현실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공감이 커지길 바라며 읽고 배워본다.
그런데... 저자의 분석에는 미중의 현실에도 ‘전쟁을 포함한’ 내용들이 등장한다. 국경선을 맞대지 않은, 멀리 떨어진 가장 힘센 국가들이라 어차피 남의 일이고, 예전처럼 다른 누구의 목숨으로 대리전을 하면 된다는 심보인가 싶어서 화가 나기도 한다.
그래도 전쟁으로 유도당하지 않기 위해, 내가 만날 수 있는 가장 예리한 분석과 평화를 바라는 제언이기에 끝까지 읽고 배우고 싶었다. 더구나 현실은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가 이미 많아서, 누구의 전쟁도 세계 전체의 위협이 될 수 있고, 이미 위험천만한 침략과 전쟁이 진행 중이다.
저자는 전쟁을 ‘실질적 위험’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방식으로, 전쟁 가능성을 보여준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위기나 위협을 부정하거나 외면하거나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그러면 피할 방법도 제대로 찾아낼 수 없다. 전쟁만이 아니라 다른 문제에 있어서도 그 무력함과 무기력이 정말 괴롭다.
전쟁은 단지 물가상승을 부추기는 사건이 아니다. 내가 사는 곳이 전쟁터가 된다면 이제껏 걸어온 모든 발걸음이 무화된다. 미중 전쟁이 만에 하나 발발한다면 한반도는 한국전쟁보다 회복할 여지가 더 적은 절망과 파괴를 경험할 것이다. 비참하고 엄중한 생존의 문제다. 어떤 전쟁은 대학살 또는 인류의 종말을 고하는 소식일 것이다.
저자가 연구만 주로 한 학자가 아니라서 실체를 모르는 불안은 덜어낼 수 있었다. 저자는 확실하게 국제정치의 현실주의에 기반하고 있다. 오래되고 깊은 미중간의 오해와 여전한 세계관 차이가 이해되고, 큰 변화와 돌발이 적을 중국사회의 현재가 보이기 시작한다. 묘하게도 더 불안한 것은 어떤 정국을 맞을지 모를 미국 상황이다. 대통령 선거제 국가의 필연적인 불안정성이랄까.
개인도 국가도 오해와 갈등과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는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차분하고 진지하게 이해하기 보다는 낙인을 재빨리 찍고 비난하고 적대시하고 저열한 공격을 퍼붓는 시절이라 걱정이 줄진 않는다. 그럼에도 다른 방법이 있다면 전쟁을 수단으로 삼는 파멸적 결정은 누구도 반기지 않을 거라 믿고 싶다.
문제는 ‘신뢰’를 새롭게 마련할 수 있을 것인가, 이다. 역사적으로 지켜지지 않은 약속들이 많다. 미중 모두 서로를 불신할 이유는 적지 않다. 그럼에도 미래를 보고 다시 만들어갈 약속과 거래라는 안전장치는 반전의 필수 조건이다.
“시진핑은 정치적 생명이 다하기 전에 타이완을 확보하고 싶어할 것 같다. 그는 타이완에 관해서는 조급한 사람이다.”
다만 이해당사자에 속하는 다른 국가들의 의견과 이해를 무시하고 미중이 바라는 대로만 국제관계가 진행되어서도 안 된다. 외교란 끔찍하다. 전쟁터에서도 정신 차리고 화해의 길을 모색해야하는 수많은 이들의 목숨이 걸린 직업이다.
나는 늘 꿈이 작은 사람이라, 저자가 미중 간 평화구축이라는 큰 이상보다는, 패권 경쟁을 하더라도 ‘전쟁을 할 필요는 없다’고 하는 설득이 가장 큰 위로가 되었다. 딱 그만큼만 가능했으면 좋겠다.
“본격적인 핵미사일 능력을 확보하려는 북한을 미국이 선제 타격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럴 경우 남한에 대한 북한의 대규모 군사 행동으로 이어져 제2의 한국전쟁이 발발할 위험이 있다.”
저자가 제안하는 10개의 시나리오 중에는 한반도에 사는 독자로서 현실적 가능성을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도 있다. 외교와 정책 관련 일을 하지 않은 독자라도 읽고 배우서, 우리 모두를 전쟁으로 내몰지 않을, 전쟁을 막는 일에 기여할 정치인을 뽑을 수는 있다. 국제 전쟁은 이미 발발했고, 언제 끝날지 모르며, 확전될 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는 더욱 확실하게 평화를 말해야 한다.
“가장 심각한 위험은 타이완을 둘러싼 미중 간의 전쟁 가능성이다. 더 이상 상상 속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 이 전쟁은 육지와 해상, 우주로까지 광범위하게 확대될 수 있다. 전 세계의 다른 많은 국가가 참전할 가능성도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