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환담
윤채근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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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알던 이야기들을 다양한 장르로 재창작하고 재구성한 기담, 민담, 환담집을 원작보다 더 재밌게 읽습니다. 고전서사 팩션 26, 어른버전 전래동화 같을까...? 새 책 만난 어린 날처럼 두근거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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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과 무관하게 홀린 듯 좋아한 책*이 있었다. 오독이 많았을 수도 있지만, 쓰고 있던 과학 논문과는 전혀 다른, 아름답고 품위 있게 세상의 병리와 폭력을 설명하는 시적인 언어가 좋았다. 몇 명 읽지도 않을 논문을 죽어라 쓰면서 든 의문과 불안 탓이었을까.

 

* <A language older than words>, Derrick Jensen

 

이야기를 좋아한다. 처음 들은 이야기가 가장 친밀한 존재로부터 들려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환원되는 기억 속에서는 그리운 목소리가 있고, 잠들기 전 상상하던 궁금한 세상이 있다. 그리고 창작 속에는 말하지 못한 현실이 있다.

 

최근 팩션의 힘을 강렬하게 느낀 영화 <서울의 봄>을 보고, 제한된 사실을 아는 것과 문화예술로 체험하는 것은 어떻게 다른 일이지 새롭게 절감했다. 그 충격과 감동은 다행히 공통의 것이라 나의 문화 오독을 의심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 책의 이야기는 인물들을 매개로 역사 속으로 다이빙하듯 시작된다. 죽은 사람을 온전히 되살리는 마법 같은 이야기 속에서, 알던 이가 낯선 사람이 된 듯 심장이 선뜻선뜻한 기분으로 짧은 단편과 문헌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환상 속에서 만난 진실이 믿음이 될까 두려우면서도 기꺼이 매혹 당한다.

 

이야기 속에서 나는 바꾸고 싶은 역사의 목격자가 되어 애타기도 하고, 살인자를 함께 쫓기도 하고, 결정적인 장면의 유일한 생존 증인처럼 호흡을 고르고 침통해하기도 하고, 누군가의 내밀한 진실을 알게 된 듯 당황하기도 한다. 이 모든 사연이 304쪽 안에서 펼쳐진다는 것이 환상 같다.

 

나는 살아볼 수 없는 시대의 장소들과 만날 수 없는 인물들에 친밀감을 느끼고 그리워하기도 하면서, 어느새 이 고전 서사를 내 경험의 일부처럼 여기게 된다. 계속 머물고 싶은 빠져나오기 싫어지는 고혹적인 환상체험이다. 얼마 못 버티고 나는 다시 이 책을 열어볼 것 같다.

 

읽기 전에 무엇을 짐작하고 기대했는지 지금은 정확히 알 도리가 없지만, 놀라고 감탄하며 매 단편을 읽었다. 오래 졸여서 최대한 응축된 무언가를 맛본 듯 진하고 강렬하다. 아주 재밌는 이야기들을 표현할 어휘 부족이 아쉽다.

 

이 세상이 본디 크나큰 이야기인 셈 아닌가요? 그 이야기가 덧없이 끝나버릴까 두려워 잠들지 못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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