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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구를 떠나지 않는다 - 죽어가는 행성에서 에코페미니스트로 살기
에코페미니즘 연구센터 달과나무 지음 / 창비 / 2023년 11월
평점 :
‘지구 온난화’는 유엔 사무총장의 발표로 공식적으로 종식되었다. 표현만큼은 모르는 사람이 없는 사회적 이슈였으니 기쁜 소식일까. 현실은 비상과 재앙의 시기로 접어들었다. 지구는 가열화heating를 거쳐 열탕boiling으로 변했다.
지구 곳곳이 불타건, 물에 잠기건, 빙하가 녹건, 가뭄과 폭우와 폭염과 한파가 덮치던 인류의 주요 관심사는 변하지 않았다. 탄소배출을 멈추고 어떻게든 지구를 인간이 살만한 곳으로 유지하고자 하는 지구 공동체 규모의 행동은 없다.
인류의 이런 겁 없음에 몹시 두렵고 자주 화가 난다. ‘기후우울’이라 부르기도 한다는데, 있는 방법도 쓸 줄 모르는 행동 무능이 기막히다. 와중에 갖가지 수상한 협업 제안이 들어온다. 글을 보고 연락한다는데 글을 읽었을 리가 없다.
학교를 오래 다녔고 전공과 직업으로 읽기와 쓰기를 지겹게 했다. 대다수가 읽지도 않고 사회적 영향력도 없는 일을 평생 할 자신이 없어서 그만 두었다. 이후 독서는 내게 다음과 아주 유사한 의미고 행위가 되었다.
“독서는 제게 여흥이고 휴식이고 위로고 내 작은 자살이에요. 세상이 못 견디겠으면 책을 들고 쪼그려 눕죠. 그건 내가 모든 걸 잊고 떠날 수 있게 해주는 작은 우주선이에요. 그러나 제 독서는 전혀 체계적이지 못해요. 굉장히 빨리 읽는다는 점에서는 아주 운이 좋은 편이죠. (...) 저는 그냥 전부 흡수한 후에 어디선가 숙성되기를 기다리거든요.” - 수전 손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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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몇 년 살다보니, 도피와 망각이 아닌 독서는 두렵다. 그중에서도 이론과 일상의 괴리를 허용하지 않는 에코페미니즘은 정말 두렵다. 더구나 1990년대 에코페미니즘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싶어서 구할 수 있는 책들을 열심히 찾아 읽은 기억이 체증처럼 무겁다.
당시 소개된 급진적 생태철학에는 심층생태학, 생태사회주의, 생태여성주의(ecofeminism)이 있었다. 이후 영국에서 심층생태학자도, 에코페미니스트들도, 머레이 북친Murray Bookchin의 친구인 생태사회주의자도 만났다. 그리고 아무런 사회적 환원도 없이 나는 속편하게 해외기업에 취업했다.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한국에 <여성환경연대 부설 에코페미니즘 연구센터 달과나무>가 설립된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꾸준히 하는 이들은 어디나 존재한다. 심장이 따끔거리는 심정으로 존경하는 연구자와 실천가 15명의 이야기를 펼쳐 보았다.
연구와 고민을 많이 한 이들이라 담론 소개도 선명하고, 이론에 치우치는 제언만 하지도 않는다. 참 멋지다. 기후 위기를 초래한 자본주의, 성장주의,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확실한 지적은 물론, 지향도 분명하게 밝힌다.
화성 이주가 불가능하고 하고 싶지도 않은 모두가 지구를 다시 살만한 곳으로 바꾸자고, 그 지구는 모든 생명이 공존할 수 있고, 기후정의와 젠더정의가 실현된 곳이어야 한다고.
그러니 에코페미니즘 입문서를 읽고 배우고, 지금 여기서 변화를 만드는 실천을 하자고 안내해준다. 지지 말고 앞으로 같이 나아가자고 한다. ‘이론과 일상의 괴리’ 대신 이론화와 삶의 체화를 함께 하자고 한다. 정치적 연대는 물론!
읽을수록 기쁘다. 소위 인생 2막(있다면)에는 흙 만지고 식량을 키우면서 살고 싶은 나는 2부에서 소개된 삶의 방식이 반갑다. 도시-지역의 풀뿌리 여성소농운도, 가능한 늘어난 자급적 삶의 형태. 제대로 ‘농사’는 어려워도 텃밭 입문은 가능하지 않을까, 이런 나도.
이 단단한 책에는 이론과 일상의 전환만이 아니라, 사상적 전환을 위한 내용도 친절하고 담겨있다. 그리고 4부에서는 오래 전 내게 처음으로 돌봄(care, caring)을 가르쳐주신, 암으로 안타깝게 돌아가신 그리운 분을 떠올리게 하는, 대안적 가치로서 돌봄에 관한 아름다운 통찰이 전개된다.
살던 대로 살면, 지구는 절대 살만해지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에겐 실험과 시도를 위한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을 지도 모른다. 기후재난은 행성 규모의 일이라 두렵고, 현실 정치에는 관련 문제에 관한 인지도 감수성도 의지도 없어 처참하다. 하지만 여기 목소리들이 있다, 지구에서 전환을 이뤄내겠다는.
“우리는 어떻게든 서로 연결 되어져 있다.”
그러니 다정한 용기를 내자. 좀더 오래 서로의 곁에 머물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