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견자들
김초엽 지음 / 퍼블리온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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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버섯이지, 하며 거의 매일 버섯을 먹던 날 중 하나, 이 작품을 펼쳤다. 김초엽 작가의 세계에 순식간에 깊숙이 빨려 들어가는 건 예상하고 기대했던 일이지만, 문자 텍스트가 이토록 현현하게 영상처럼 펼쳐지는 건 놀라웠다.



 

굳이 찬사를 보탤 필요가 없는 작가의 필력을 제외하고 생각해보면, 이 작품의 설정이 아주 근원적이고 거대한 공포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낯선 환경을 새롭게 발견하는 일이 아니라, 익숙한 지구를 낯설게 하기, 인간은 집을 잃고 지하에서 생존 중이다.

 

범람체들은 바로 저 우주로부터 왔다. 한때는 인간이 갈 수 있고 소유할 수도 있다고 믿었던 먼 곳의 행성으로부터. 우주를 갈망하던 인간은 우주의 한 조각이 지상에 불시착하도록 만들었다.”

 

이 서늘한 두려움은 현실이 될 것 같기도 해서 더욱 무섭고, 놀랍게도 읽는 동안 서서히 옅어지기도 한다.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보면, 지구에서는 오랫동안 범람체가 지구상의 물질 - 생명 - 을 부패와 분해를 통해 변환시켜왔다.



 

한 존재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서사를 인식하는 것, 그게 자의식이야.”

 

자의식과 정체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인간의 미토콘드리아도 단일 존재가 아니다.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것은 실은 인간의 몸에 공생 중인 다른 존재들이다. 심지어 총중량은 인간 이외의 것들이 더 많다. 과학 지식 정보를 바탕으로 생각을 거듭할수록 인간을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존재론적 질문에 짓눌린다.

 

너희는 이미 수많은 개체의 총합, 하나의 개체로는 너희를 설명할 수 없어. 네 안에는 다른 생물들이 잔뜩 살고 있어.”

 

그 존재들은 너와 같이 살 뿐만 아니라, 너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어. 의식이야말로 주관적 감각이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야.”

 

감정이란 개체 단위로 존재하는 생물들이 주관적인 신체 감각을 해석하기 위해 만들어진 문화적 도구이니까.”

 

결별할 수 없다면, 단독자가 될 수 없다면, 이미 탄생부터 생존과 사멸까지 모두 다른 존재와 함께 하는 것이 인간의 유일한 존재 방식이라면, 그 존재들과 전쟁을 통해 한쪽만 살아남자는 어리석은 생각을 할 수는 없다. 유일한 방법은 공존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공생은 인간을 살리게 하지만, 다른 존재들은 인간을 꼭 필요로 하지 않는다.



어쩌면 현실이 될 지도 모르는, 어쩌면 이미 현실인, 어쩌면 언제나 역사였던 생태계 자체를 소재로 삼아, 지독하게 낯설게도 하고, 저항할 수 없이 받아들이도록 하는 작가와 작품이 가진 힘이 엄청나다. 의도와 상관없이 나는 완전히 설득 당했다.

 

낯선 조우가 어느새 오래된 꿈만 같았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인정의 문제였다. 변이는 죽음이 아니라는 것, 그들은 망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단지 다른 형태의 삶으로 진입했다는 것.”

 

지구 단위의 공동체로서의 경험과 훈련, 미래를 통해 현재에 전하는 경고, SF 문학에서 늘 바라고 찾던 모든 것이 이 작품에 있다. 단선적이고 일방적인 설정을 가뿐히 뛰어넘어, 지구의 모든 시간이 어우러지는 듯 환상적인 파노라마를 환각처럼 펼치며.

 

그런데... 뜻밖에도 나는 읽는 내내 사랑 때문에 많이 아팠다. 저릿하고 욱신거렸다. 맹목이고 진심일수록 어긋나기도 하는 사람, 그럼에도 사랑, 그래서 사랑. 그 단절에 그 방식의 폭력이 꼭 필요했을까. 많이 슬펐다.

 

그럼에도 작품 속 격발이 그쳤듯, 현실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나길, 마지막 문장까지 기대하며 읽게 된다. 아름답고 슬프고 다정하고 아프고 촉각적인이 작품이 인류 문명에 각인되듯 읽히길 바란다.

 

지상에서 살아가기 위한 특별한 조건이 있냐고.”

 

그야 당신이 오직 당신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환상을 버린다면, 얼마든지 가능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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