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들의 세상은 내가 사는 세상이다 - 세상 끝에서 경이로운 생명들을 만나 열린 나의 세계
나이라 데 그라시아 지음, 제효영 옮김 / 푸른숲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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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와 탐험을 목적으로 남극을 방문하는 경우를 가끔 듣지만, 관광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알고 있다. ‘남극 관광이란 여행상품은 유람선을 타고 짧은 시간 근해를 돌고 오는 방식이라고 한다.

 

이 책은 생물학자이자 해양대기청(NOAA) 소속 생태계 모니터링 연구자인 저자가 남극에서 매일 펭귄을 관찰하며 보낸 5개월 동안 보고 듣고 느끼고 떠올린 것들을 담은 회고록이다.

 

다큐멘터리에서 본 아델리 펭귄 생각,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던 물범 생각, 아라온 쇄빙선과 남극기지 생각, 초원과 냇물이 생겼다는 뉴스가 생각난다. 기록 자체로도 귀하고 저자의 시선을 마주할 생각에 살짝 두렵고 많이 설렌다.

 

인간의 접근이 가능한 자제되어야 한다고 믿지만 나도 남극에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길 지도.




 

그 순간 내 앞에 펼쳐진 모든 것이 아주 가깝고 친밀하게 느껴졌다. 갈매기와 고래, 펭귄, 그리고 내가 저 뭉실뭉실한 회색빛 담요 아래에서 옹기종기 함께 웅크리고 있는 듯.”

 

턱끈펭귄, 전투펭귄, 남극물개, 얼룩무늬 물범, 코끼리 물범, 고래, 크릴, 도둑갈매기... 다큐멘터리 좀 본 시간이 무색하게 모두 새롭게 배우는 기분이다. 저자 덕분에 생명력이 가득한 남극의 계절을 봄, 여름, 늦여름, 가을로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시선은 남극의 동물들에 오래 머물고, 마음은 연구자인 저자의 일상에 더 끌려갔다.

 

해변의 바위에 앉아 나를 둘러싼 자연을 가만히 보았다. 감격스럽고 강렬한 감정과 함께 피로가 몰려왔다. 나는 그 모든 것에 경의를 느끼는 한 마리 포유동물이 되어 조용히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자연과학 전공자로서 이해하고 공감할 면도 있고, 나로선 지금도 힘들 조건에서 꾸준히 즐겁게 연구하고 기록하는 이에 대한 존경도 커졌다. 사생활 전혀 없는 원형 오두막에서 동료들과 함께 먹고 자고 양동이에 볼 일 보고, 수기 100%로 기록하고 훼손이나 분실 위험도 감수하는 연구 방식이다.

 

펭귄을 직접 잡아서 먹이 조사하는 장면을 읽으며, 무섭도록 그리운 세월 속, 올챙이부터 키운 개구리를 세탁세제 넣은 물에 삶아 뼈를 추리고, 정든 실험쥐의 척추를 한 번에 부러뜨려 죽여야 했던, 생물학 전공하던 친구가 전하던 이야기와 표정이 떠올랐다.

 

우리는 늘 똑같은 지점으로 돌아온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마지막 순환에서 생긴 일들로 인해 출발점은 돌이킬 수 없이 바뀐다.”

 

감정 과잉을 살살 누르면 일독을 마치고 나니, 남극과 펭귄에 대한 막연하거나 대략적인 이미지들이 모두 상세한 묘사로 바뀐다. 재밌고 유익하며 가차 없이 진짜 생태계를 배우게 해주는 책이다. 조약돌로 집을 짓는 펭귄 이야기에 조약돌 줍기를 좋아하던 오래던 나도 오랜만에 만난다(사진만 찍고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이런저런 설파를 하지 않아도, 세밀한 기록은 그 자체로 인간 포유동물로 살아가는 삶에 대해 온통 복잡한 생각과 반문을 하게 하는 힘이 있다. 새롭게 만나고 배우는 지구의 어떤 풍경이 아름답고 눈부실수록, 인간이 초래한 결과인 현실이 부끄럽다.

 

가장 평범한 날에도 기후재앙에 대해 생각하는 날들, 플라스틱은 해양에도 비에도 토양에도 남극 동물들 몸에도 있을 것이다. 지구 생명체들 모두의 세상은 각자의 경이로움을 연결되어 있는 한편, 인간이 만든 재해에 모두 영향을 받는 권역으로도 연결되어 있다. 죄책감을 피할 곳이 없다.

 

기후 변화가 생동감 가득한 이곳 해안의 근간을 위협할 만큼 바짝 다가온 지금,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것은 어떤 가치가 있을까?”

 

알면 사랑하게 된다는 최재천 교수님 말씀을 의지하고 싶다. 이 책을 통해 남극은 인류에게 유용한 자원개발의 각축장만이 아니라, 많은 생명체들이 이토록 치열하게 삶을 이어나가는 생태계, 모두의 집이자 그 이상이라는 것이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

 

남극은 각종 표와 지도에서 기후 변화의 영향을 보여주는 곳을 넘어 여느 대륙들과 같은 곳이라는 사실, 비통함과 슬픔, 즐거움과 사랑이 가득한 생존의 땅임을 전하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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