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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네 여행기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29
하인리히 하이네 지음, 황승환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10월
평점 :
하이네 본인이 생전에 바라던 일 - 「북해」 연작을 묶은 단행본 출간 - 을 을유세계문학에서 이루었다. 덕분에 이 책 한 권으로 나는 북해로 떠나는 긴 항해에 동참하여, 대서사를 끝까지 즐길 수 있게 된다.
소장용으로도 선물용으로도 반가운 귀한 책이다.
시(詩) 문해력이 낮은 독자라서, 오히려 부담 없이 1부 북해의 시들을 일독하고, 2, 3부의 산문, 여행기를 반갑게 읽었다. 독일에서 유학한 두 친구(독일문학, 독일철학 전공)에게 전해들은 하이네 스토리도 친근함을 유지하며 글을 따라가는데 도움이 되었다.
제 이목은 지금 유럽에서 자유와 평등의 토대를 다지는 일에 종사하고 있는 몇몇 다른 동시대인들*에게 온통 쏠려 있습니다. * 생시몽주의자들을 암시함
1831년 6월 20일, 파리에서
하인리히 하이네
사회를 비판하고 혁명에 관심을 두다 추방당한 시인, 타국에서 죽을 때까지 창작활동을 한 시인에게 냉담하기란 불가능하다. 체력이 넘치고 곧 유학을 가기 전이라, 괴테**의 여행기가 즐겁고 궁금하기만 했던 20대가 아니라, 간신히 매일을 살아가는 지금 만나게 되어 여행기도 시도 더 감사하다.
** 하이네가 3부에서 괴테의 <선택적 친화력Die Wahlverwandtschaften>의 멋짐을 언급한다. 을유세계문학전집으로 6월에 읽었다. 반가웠다.
현재 다수 출간되는 여행기들과도 전혀 다르고, 괴테의 여행기와도 다르다. 여행을 하는 하이네 자신의 ‘사유와 사상’을 뜨겁게 펼치는 문장들이 가득하다. ‘여행’은 사진과 추억보다, 익숙한 일상을 떠나 낯섦 속에서 ‘나’를 마주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더 반갑고 흥미로웠다.
“삶의 모든 공유하는 관계들이 기억 속에” 없는 파편적인 내 관계도와, “정신적을 가면을 쓴 채”로 외롭게 살아가며 오해를 거듭하는 하이네의 ‘우리’가 닮아서 모두 애틋했다.
혁명 전 시인이 관찰한 지배와 억압과 거짓에 근거한 행복을 엮은 거미줄도, “질식감과 비참함을 느낀” 이들의 시도를 무산시키는 간교한 이들도, 어리석은 대중의 몽환적인 행복과 정신적 예속도 지나간 시대의 풍경 같지가 않아 서글펐다.
부정하지 않는 괴테에 대한 관심과 상당 분량의 ‘수다’도, 북해 연안 곳곳의 많은 미신과 전설도 시공간의 경계를 흐리는 여행을 잠시 체험하듯 즐거웠다. 바다도 하이네도 사랑하게 될 것 같았다.
“내 영혼을 사랑하듯 나는 바다를 사랑한다.”
[이념 - 로그랑의 책]은 새롭고 난해했다. 기이할 정도로 낯설었다. 계속 읽는 일이 옆 자리에 앉은 남의 이야기에 가만히 귀 기울이는 일 같았다. 화자에 대해서도 이야기의 배경에 대해서도 정말 알지는 못한 채로.
“랄랄라 -” 가 등장하고 이야기가 끝나자, 나는 이유도 모른 채 크게 웃었다. 각자의 현실도 현상으로 묶인 현실도, 실은 기이하고 때론 의문이 가득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니 이상할 것이 없다.
1부 북해의 시로 돌아가서 [정화]를 다시 읽었다. 미친 꿈과 위선 위로/ 바람이 불고/ 배가 내달리고/ 해방된 영혼이 환호한다. 아쉽게도 지금, 여기의 삶은 하찮고 무기력은 짙고 무력함은 거대하다. 해방은 도착 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