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돌보다 - 의무, 사랑, 죽음 그리고 양가감정에 대하여
린 틸먼 지음, 방진이 옮김 / 돌베개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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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이 얼마가 될지, 어떤 방식일지는 몰라도, 우리는 얼마간 자신의 부모를 돌보게 될 가능성이 크다. 나도 마찬가지니, 서로에게 상처를 더하지 않도록, 이 책을 통해 관계와 감정과 체계에 대해 배워보고 싶었다.

 

희귀 질병을 앓는 어머니를 11년간 돌보았던 경험을 사실적으로 이야기하는 자전적 에세이. 늙고 병든 부모를 돌보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기에 보편적이면서, 각각의 경험과 고통은 모두 개별적일 수밖에 없기에 유일하고 특별하다.” 책 소개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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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책을 자주 놀라면서 읽었다. 대체로 감정 과잉이 되는 어머니돌봄이 함께인 제목인 책을 무슨 용기로 마주하기로 했나 하는 두려움이 10년을 세월을 담아낸 절제된 목소리에 잦아들었다. 기분이 들뜰 만큼 고마웠다.

 

무엇으로도 말끔히 씻어내지 못하는 감정을 가진 관계의 모든 것은 얼마간의 억울함과 다층적 억압의 성격이 있어서, 솔직하자는 내 시도는 늘 실패했다. 이토록 절제된 문장마다 저자가 눅여낸 감정들은 무엇일지 좀 서러웠다.

 

말이 잘 안되기도 하고, 말로 다 하기도 어렵고, 사적인 특수성이 강해서 더 복잡해지는 경험을 이만큼 담담하게 쓰는 저자를 자꾸만 상상했다. 많은 것이 다르지만 당사자가 된 듯 읽게 되는 몰입성이 더 강한 책도 드물었다.

 

돌봄의 영역, 즉 무보수로 강제된 가정 내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한국인 독자들은 아프고 불편하게 읽을 것이며, 화자로서 할 말 또한 구구절절 넘칠 것이다. ‘당연하다자연스럽다란 이데올로기가 된 말의 폭력성도.

 

치매 진단을 받은 오랜 친구의 어머니는 좁은 집에 갇혀 지내는 것보다 요양 병원에서 운동하고 생활하시는 것을 훨씬 더 좋아하셨지만, 늙고 아픈 부모를 모시지않고 전담기관에 보내는 것에 대한 저항과 비난은 거셌다.

 

부모를 모셔도 기관에 입원시키고 돌봐도, 물리적인 힘듦과 무거움에 더해서, 자식들은 감정과 정서적인 노동과 공격과 상처를 감당해야 한다. 작가가 그러한 마음 쏟기로부터 숨 쉴 여지를 만들어 주는 문장이 반갑고, 전적인, 진정한, 완전한 마음 쏟기가 불가능할 수 있다는 지적이 고마웠다.

 

나는 좋은 딸 역할을 연기했지만 거기에는 내 진심이 담겨 있지 않았고 대신 내 양심은 담겨 있었다. (...) 내가 어머니에게 내주는 것은 어머니가 받을 자격이 있는 것보다 많았다.”

 

모성신이 현현한 것과 같은 좋은어머니들은 실존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 자식과의 관계는 여러 이유로 나쁠 수도 있고, 가해와 유해가 심각한 관계도 있다. 모성 신화를 가진 사회에서 사회화된 자식의 기대와 바람은 모두 자신에게 상처가 된다. 나는 그랬고 여전히 그 어린 깜냥으로 살아서 괴로울 때가 적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물리적 도움을 제공하는 작가의 선택에 안도하고, 나 역시 온전하지 못할지라도 매일 늙고 약해지는 어머니에게 할 수 있는 도움을 드리고 싶다. 그 이유가 결국엔 나를 위한 위안이나 변명이 될 지도 모르지만 그건 내가 감당하자고 판단한 책임과 의무의 범주에 들어간다.

 

살다보면 남이면 차라리 더 나은 일도 적지 않다. 나는 작가가 느끼게 해준 관계의 거리두기와 거리감이 남이 아니라서 더 못한 관계를 보듬는 통찰과 해법이라고 느꼈다. 완전히 단호하게 끊어버리고 타인이 될 수 없다면 더욱 더.

 

읽는 동안 대부분 에만 골몰했지만, 덕분에 담담해진 기분은 오랜 세월 매일 같이 누군가를 돌본 많은 분들 - 자식이든 아니든 - 이 계셨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어쩌면 주변에서 알아주지도 않고, 어쩌면 부당한 비난을 감수해야했을, 어쩌면 다른 선택지는 없이 끝까지 매여 있어야했을.

 

사회적인 재인식이 필요한 것들이 많다. ‘사적인 것들로 규정된 것들 중에 많은 것들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이고, 한계에 다다른 부작용은 가시화된 지 오래다. 가족과 돌봄을 개인과 사적 자본에게 전담시키자고 하는 사회와 국가의 존재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의학계가 노인을 취급하는 방식은 사회 전반이 노인을 취급하는 방식과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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