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의 마법 살롱
박승희 지음 / 허블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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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고 나니, 기분이 더 묘하게 울렁거린다. 마치 인용과 강조 표시와 밑줄이 전혀 없는 담담한 타인의 일기장을 읽은 듯도 하다. 제목만 봤을 때 짐작했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작품이었다.

 

내가 고르는 내 이름이야말로 가장 나다운 거지.”

 

판타지 장르에 반드시 기대하는 특정 설정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이 작품의 배경은 현실에서 유리된 곳이 전혀 아니었다. 그래서 공감의 속도가 빠르고 거리감이 구체적이었다. 압구정 사거리에서 경기도 어느 야산 정도랄까.

 

명예남성처럼 성장한 나조차 지겨울 만큼, 사회 곳곳이 남성주인공들과 화자들로 가득하다. 여성 캐릭터들이 여럿이고 중심인 작품은 휴식이자 안도이기도 하다. 놀랍도록 다정하고 마음 약한 존재들이라면 더욱.

 

세상의 많은 사람을 기쁘게 해주겠다는 꿈이 있었다.”

 

나는 미용실에서 들어본 적 없는 사연들을 나누며 사는 마법공간이 현실에도 무수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부럽고 궁금하다. 손님이든 이야기친구든 찾아 온 모두를 품고 거두는 제인 - 사장이자 마녀이자 미용사 - 의 품이 존경스럽다.

 

세상에서 내가 허락된 곳은 아무 데도 없으니까!”

 

(...)

 

그럼 직접 만들면 되지.”

 

마녀로 산다는 선택에 지독한 절망이 전제된 것이 몹시 아프고, 누구에게도 권할 수 없는 방식이지만, 그 암흑 저편에 잡을 손이 있다는 것은 거대한 희망 같은 상상이다. 삶이 더 잔혹해진다는 건 엄살만은 아닐 지도 모르니까.

 

누군가의 기쁨과 행복을 짓밟는 존재는 세월을 거듭할 때마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어쩌면 절대로 끝나지 않는 싸움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 판타지에는 전쟁도 복수도 없다. 그보다 몇 백배는 더 어려운 사명이 포인트 쌓기 게임처럼 별 거 아닌 듯 부여되었다. 스스로 행복해지는 방법도 참 모를 일인데, 타인의 행복과 기쁨을 위한 연대는 어떻게 가능할까.

 

스스로 죽을 용기 같은 건 없었다. 다만 더는 앞으로 나아갈 힘이 없었다.”

 

각각의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세상이 이렇게 순했으면 좋겠단 생각도 하고, 작은 위로만으로 힘을 낼 수 있는 많은 이들이 한없이 방치된 것이 가장 잔인한 현실인가 싶기도 하고, 이런 다정한 이야기 흐름이야말로 가장 판타지스럽다고도 생각했다.

 

우리의 시간은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한, 사람들의 기쁨과 행복으로 유지된단다.”

 

잘 모르겠다. 안다고 생각한 사람도, 사람 일반도, 인간 존재도, 모두 다 모르겠다. 그럼에도 작가가 섬세하게 묘사한 아픔들이 누군가의 손길로 완화되는 순간들마다 함께 안도의 큰 숨을 내쉬었다.

 

주어지는 것들만 말고, 스스로 만들어가는 나도 함께 하는,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도우면서 같이 행복해지는 꿈. 숲이 있는 표지가 좋다. 현실에도 있으면 좋을 텐데. 독서후유증인지 동네미용실을, 마녀를 찾아 가고 싶어졌다.

 

가끔은 처음 보는 사람이 더 편할 때가 있잖아요. 오히려 비밀도 보장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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