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길로 가 우리학교 그림책 읽는 시간
피터 H. 레이놀즈 그림, 마크 콜라지오반니 글, 김여진 옮김 / 우리학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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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대로 살게 된다는 말이 있고, 한편으로 맞기도 하지만, 더 자세히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생각이라는 것이 고유하고 독립적이고 본질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언어는 사유다라는 말이 팩트에 거 가깝다. 특히 개념어들인 경우는 절대적이다. 언어가 없으면 생각을 표현할 수도 설명할 수도 전개시킬 수도 없다. 그리고 객관적 지시어라고 생각한 언어가 실은 개념어인 경우도 적지 않다.

 

방향을 표시하는 오른쪽, 왼쪽의 경우도 그렇다. 오른(옳다, 바르다, right)은 지시어가 아니라 개념어이고, 위계가 분명한 차별어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이 사용하는 손의 위치가 옳고 바르다는 것이다. 그러니 예외(왼손잡이, lefty)는 필시 그른 것일 수밖에.

 

원제 제목이 기발하고 유쾌해서 좋다. When things aren't going right, go left. 번역도 멋지다. 예를 들어 (오른 쪽으로 가다 잘 안 되면) 왼쪽으로 가 봐, 라고 했으면, 관념적으로 어색하거나 역사적으로 의심(?)이 들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이 길이 아닌 것 같아, 다른 길로 가보기로 했을 때 필요한 것들을 무엇일까. ‘걱정을 두고 떠나기, ‘의심을 두고 가보기, ‘두려움도 두고 해보기. 또 무엇이 필요할까. 그냥 해보기 위해서는.





 

주저앉는 대신, 다른 길로 걸어보기로 한 이들 중 걱정과 의심과 두려움과 좌절감보다 일이 잘 풀린 경우는 어쩌면 많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도 몇 십 년 살아본 경험상 모든 일은 시작 전이 가장 무겁고 거대해 보인다. 일단 시작해서 순서대로 할 일을 차근차근 하다보면 어느새 크기도 분량도 줄어들어 있(는 경우가 적지 않).

 

그러나 걱정과 의심과 두려움은 다 버리고 묻어야 할 것들일 뿐일까. 이런 감정과 기능이 없다면 인간은 애초에 생존 가능성이 훨씬 더 낮았을 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비겁한 조상 탓에 태어났다는 말은 과학적 사실이기도 하다.

 

차분하고 침착해진 약간의 걱정과 의심과 두려움은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도울 수도 있을 것이다. 대개 그렇지만 그림책은 아름다운 선물이자, 모든 연령의 독자들이 만나면 좋겠다 싶은 메시지를 품고 있다. 이 책도 그렇다.

 

분단국가와 혐오 사회에 사는 시민 독자로서, 이 책은 더 각별하다. 작가와 배우들이 파업했는데, 배우노동조합에 기금을 내는 맷 데이먼과 메릴 스트립 등의 소식, 여성 배우에게 남성과 동일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프로젝트 출연을 거부한다고 선언한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선언을 들으니 더 그렇다.

 

생계를 보장받는 최저출연료 제도와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 배우노조 설립의 이유다. 좌파, 빨갱이 타령 대신 한국에서도 보고 싶은 다른 방향(go left)의 연대이다. 다른(not right) 길은 그른(wrong) 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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