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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 문병욱
이상교 지음, 한연진 그림 / 문학동네 / 2023년 9월
평점 :
담백한 이야기와 그림이 가진 힘이 참 크다. 40년이 넘은 기억을 디지털 필름으로 보정한 듯 생생하게 꺼내 주었다. 오래 전 잊어버린 어린 시절 내 목소리도 들리고, 잊고 살며 안부를 챙길 생각도 못한 고마운 친구도 보인다.
내가 봄을 반가워하지 않은 이유 중에는, 알레르기 외에도 새롭고 낯선 모든 것들에 거듭 적응해야하기 때문이었다. 특히 학창시절에는 새 담임, 새 학급, 그리고 새 학교가 부담스러웠다. 전학을 간 경우에는 더 심했다.
초등학교 전학 간 날 내 앞자리 친구가 쉬는 시간에 몸을 휙 돌리고 활짝 웃으며 계속 말을 건네서, 긴장이 스르륵 풀리고 체온이 조금 올라간 따뜻한 기분이 들었다. 매일 내게 질문과 수다를 전하는 친구 덕분에 얼마 지나지 않아 낯선 기분이 다 사라졌다.
어려서 다는 몰랐지만, 눈이 크고 주근깨가 귀여운 그 친구는 무척 다정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모두 자연스러운 게 아니라 노력을 했을 지도 모르겠다. 같은 중학교로 진학해서 같은 반이 되어서 더 좋았다.
환한 웃음이란 고맙고 귀한 것인데, 다 잊고 살았다. 문득 나는 그런 웃음을 다른 누군가에서 전한 적이 있는가... 내 깜냥을 또 탓했다. 책 속 예지는 어른 독자인 나의 느긋한 정신이 다시 번쩍 들게 하는 태도로 사람을 대한다.
좀 다른 친구를 서둘러 오해하고 나쁜 말들을 하는 반 아이들과는 달리, 일단 지켜보고 내가 본 것을 기반으로 천천히 다가간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모함하고 괴롭히는 어른들의 사회를 생각하면 한없이 부끄러운 일이다.
근래 읽은 책에서,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추는 것이 곧 가스라이팅’이라는 문장을 만났다.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을 현실에서 매일 목격한다. 스스로 생각할 줄 알고, 아는 바를 지향 삼아 살아가고 관계 맺는 일. ‘우리’로 함께 살아가는 기본에는 이 역시 중요한 일일 것이다.
어른들이 생각 없이, 때론 유해하게, 악의를 품고 하는 갖가지 말들이 아이들에게 닿을 것을 생각하면 암담하지만, 가능하면 남들의 의견이나, 사회의 통념보다는 자신이 경험한 세상과 사유와 고민으로 새로운 많은 것들을 상상하고 만들어 나가길 응원할 수밖에.
“내일 또 보자!”는 인사를 서로 나누며. 시행착오는 과거에 두고. 반복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