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탐정으로 있어줘
고니시 마사테루 지음, 김은모 옮김 / 망고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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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쯤 된 나름의 방학/휴가 패턴이 있다. 추리/미스터리/스릴러 문학의 신간들을 읽지 않고 기다렸다가, 한꺼번에 주문해서 방학/휴가 동안 읽으며 만찬을 즐기듯 탐닉하는 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가장 효과적인 휴식이다.


 

그런데, 올 해 여름휴가를 위해 책탑을 쌓은 작품들이 취향과 기대에 맞지 않았다. 한 두 작품이라도 아주 재밌었다면 좋았겠지만 놀랍게도 그렇지 않아, 낯설고 울울한 시간이었다. 수상경력도 주위의 극찬도 무용했다.

 

그리고 올 해 마지막 연휴가 이어지는 10월에 읽어보라고 이 책을 추천받았다. 나이가 드니 심장 근육도 얇아져서 더 잘 놀라고 악몽도 꾸고 못 보고 못 읽는 것도 많아진 나를 위해 친구가 여러모로 고려한 작품이라고 했다.

 

표지와 제목을 보고 잠시 의아했지만, 일본어 원서의 표지 디자인과 동일했다. 기대할 수상작에, 안도하고 즐길 수 있는 설정이라 반가웠다. 책을 좋아하는 인물이 사건을 해결하는 선한 사회가 감동적이고 이상적이다. 스토킹 살해란 소재는 참혹하고 끔찍하지만 덕분에 마음을 다잡고 완독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현대인들이 암보다 두려워한다는 치매가 발병한 할아버지에 대한 작가의 시선이 가을볕처럼 따스하고 반짝거리고 다정해서, 남의 일만도 아닌 나이의 나는 문득 울컥했다. 치매를 앓는 분들이 운영하는 마켓에서 종종 물건을 구매했기 때문에 발병이 곧 삶의 끝이 아니라는 문학이 반갑고 소중했다.

 

감각 중에 시각이 가장 중요한 독자로서 환시에 대한 태도와 수용도 더할 수 없이 흥미로웠다. 감각과 지성과 살아온 경험이 풍성하고 매력적인 할아버지는 범인보다 궁금하고 흥미로운 인물이었다.

 

사건 현장에 가지 않고도 이야기를 통해 추리하는 방식은 어릴 적 좋아하던 클래식한 추리문학을 그립게 떠올리게 했고, 개별 에피소드로 즐긴 후 연작으로, 결국 하나의 결말로 긴장감 있게 수렴하는 전개는 간만에 놀이기구를 탄 것처럼 기분 좋은 속도감이었다.




 

사건에 대한 서술에 집중하게 되는 장르문학의 특성에 비춰보아도, 이 작품은 좀 다른 결의 인간적인 감정선을 가진다는 고유한 장점이 있다. 가에데의 아픔이 할아버지의 아픔(병증)으로 치유의 계기를 맞는 것은 절묘한 삶의 진면목 같아 먹먹했다.

 

추리와 미스터리에 충실한 사건마다 재밌는 반전을 거쳐 시원하게 해결하는 스토리도 마음에 들고, 인간적인 고민과 삶에 대한 배분이 현실적이라 애정이 더 간다. 일본의 문화와 사회, 역사와 시대상에 대한 내 부족한 지식만이 이번에도 아쉬울 뿐이다.


 

함께 사건을 해결한 적은 없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 내 어려움을 여러 번 해결해주셨을, 돌아가시기 전날에도 유학 간 나의 안부를 물으셨다는 할아버지 생각이 왈칵 났다. 저승도 귀신도 환생도 모두 있으면 좋겠다. 그리운 이들이 너무나 그립다.

 

모든 것은 유한해요. 끝이 있습니다. 젊음이라는 무기는 순식간에 녹슬어버리는 법이에요. 원하는 미래를 손에 넣고 싶다면, 부디 모험에 나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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