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예들
심아진 지음 / 솔출판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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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부족의 신화가 생각나는 표지와 제목이었다. 뜻은 같아도 후손이란 단어를 후예(後裔)*보다 더 자주 쓰는 탓도 있을 것이다. 한국 작가가 쓴 한국 소설이란 점이 오히려 이국적이고 묘한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 자신의 세대에서 여러 세대가 지난 뒤의 자녀를 통틀어 이르는 말.

 

여전히 모르겠고, 다시 가고 싶고, 제대로 여행하고 싶은 삼국 - 한국, 헝가리, 터키 - 가 배경이라, 무척 반가웠다. 좋아하기만 하고 문화적, 사회적, 시대적 지식은 너무 모자란다는 점도 절감했다. 그래도 재미있었다.

 

한국이 익숙한 한국인에게는 타국이 미지겠지만, 이 책의 묘미는 헝가리에 살던 이가 미지의 세계인 한국으로 떠나온다는 설정에도 있다. 덕분에 나도 안다고 생각했지만 잘 모를 한국으로 향하는 시선으로 여정에 참여할 수 있었다.

 

여성과 신화는 복합적인 의미를 가진다. 해석 중에는 내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도 있고, 그리운 내용도 있다. 인류가 이룬 작은 공동체인 부족과, 그 공동체를 하나로 묶던 신화(이야기)와 일상의 구심점이던 여성들이 반가웠다.

 

규모가 크고 집약된 힘인 국가는 거대한 폭력과 악행의 주체이기도 한다. 현실에선 또 다른 전쟁이 발발했고 어제까지 살던 수천수만의 사람들이 하늘을 뒤덮은 미사일에 목숨을 잃었다. 그래서 나는 이 작은 세계로 깊이 숨어들었다.

 

생명력이 가득한 자연이 있고, 초원이 있고, 신화 속 투쟁은 먼 옛날의 이상처럼 숭고하고 신비롭다. 귀연과 요세핀과 효령의 시점은 땅을 딛고 살아가는 생명들이 모두 다르게 겪어내고 살아가는 보편의 삶으로 이해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20세기 어느 날 만난, 아메리카대륙의 선주민 출신인 부족민과 (지금은 잊어버린)아프리카 어느 부족 출신 친구가 생각났다. 내게 반려신화동물(spirit animal)을 알려주고, 한국도 일처다부제인지 묻던.

 

소위 과학세대로 태어나 과학을 전공하면 살던 내게 별빛처럼 내려온 신화적인 조우는 짧은 대화와 긴 이야기로 이어졌고, 이후에 영국 거리에서 만난 집시 여인의 경고 - 땅을 딛으라(need grounding) - 로 마무리되었다.

 

우리는 모두 혼자인 존재이지만, 그래서 자신의 존재성과 위치를 스스로 정확히 파악해야 어떤 출발도 가능하지만, 혼자인 존재들이 선택하는 관계와 이어가길 원하는 기억들만이 고유한 삶의 무늬와 의미가 된다.

 

검은 우주 속 찰나의 별빛을 목격하듯, 상상력이 미진한 내가 포착한 작가의 메시지와 문해는 미미할 것이다. 경계를 흐리게 하고 뒤섞는 문학적 이야기에 익숙하지 않은 점도 종종 생각을 다른 곳으로 떠돌게 했다.

 

작품 속 혼어미는 어쩐지 한 어머니그래서 큰 어머니 같았다. 현대어의 의미가 아닌, 우리 모두의 큰 어머니. 생명의 의지처였지만 그래서 홀로는 무엇도 될 수 없었던 어머니.

 

한 사람의 일생에서 홀로인 시간이 아닌 시간보다 더 많을지 적을지는 모를 일이다. 중요한 건 시간의 분량보다 어떤 모습으로 그 시간을 채우는지 일 것이다. 혹은 홀로인 시간을 원해서 얻기 위해 노력할 지의 여부도.


 

제 후예를 남기기 위해 남은 힘을 다하는 생명들의 계절, 가을을 닮은 작품이었다. 뜨거운 포화처럼 열기 가득한 욕망과 폭력과 살해의 소식 중에도, 더 많은 이들이 모두 반짝이며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조용히 기도한다.

 

가자, 계속 산책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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