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호실로부터
제람 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경계와 공간에 대한 경계심과 강박이 심한 편이다. 피부도 경계라서 모르는 사람과 악수하는 것도 싫다. 하릴 없이 무너지는 예외적인 경우는 처음 뵙지만, 크게 웃으며 팔을 연신 때리는 유쾌한 분들에게 당하는(?) 때이다.

 

우주에서 유일하게 사적인 존재로만 있을 수 있는 집에 대한 생각도 완고하다. 내 집에 누군가 오는 것은 엄청 싫어하면서 친구들이 집에 오라면 얼른 가서 먹고 놀기를 좋아한다. 이런 인간성인데 친구해주는 자비로운 존재들.

 

생존과 제정신 유지를 위한 공간이란 물리적인 것만은 아니라서, 나는 오래 전부터 전화기를 미워했다. 시공간을 아무 때나 찢고 들어오는 소리, 응답기가 달리기 전 전화기는 종종 악몽 같아서 코드를 빼두곤 했다.

 

정신의 공간도 중요해서, 원하지 않은 정보가 뇌를 헤치며 들어오는 것도 싫고, 내 속도가 아닌 방식도 불편하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내게 가장 안전한 도피처는 책일 수밖에 없다고 재확인한다.


 

19호실이 나만의 공간이라면, 그런 공간들은 애초에 없었거나, 점점 좁아지고 있는 것만 같다. 지금은 공공장소의 안전성이 극히 불안해져서, 삶의 실질적이고 심리적 반경이 더 줄어든다는 이야기도 많이 듣는다.

 

갑갑한 상황이지만, 기회로 삼을 수 있다면, 성별, 장애, 연령 등등을 이유로 오래 전부터 공간 제한, 즉 차별을 당한 이들, 소수자들, 약자의 입장을 더 잘 상상할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단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에서 수잔은, 더 이상 어느 곳에서도 위안을 얻을 수 없다는 처절한 자각에, 마지막으로 19호실에서 육신을 두고 떠났다. 도피를 통해 변화와 회복을 얻고 계속 살아가려 했던, 그의 자아와 정체성 유지를 위한 노력은 서러웠다.

 

애착과 공존하는 괴리는 공포다. 가정의 균열, 배우자의 어긋난 이해, 사회로부터 묵살당하는 삶은 늘 위태로웠다. 일상을 뒤집어야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지만 일상의 유지에 체력의 대부분을 사용하는 나의 모순과 다르지 않아 문득 숨이 막혔다.

 

내가 단독자로서 존재할 때에도 나는 반드시 누군가의 물질적/비물질적 노동과 연결돼 있고, 나의 오리지널한 욕망은 이미 사회적 규범에 의해 순치돼있다. 이런 상황에서 나다운 것나답지 않은 것을 식별하기란 얼마나 난망한가. ‘나다움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건 아마 지겹도록 이고, 고작 이며, 언제나 를 초과하는 무엇일 수밖에 없는 이 항상적이고 기묘한 상태를 지시할 것이다.”

 

삶을 계속 살아갈 동력을 찾기 위한 예술 활동이 책 속의 프로젝트로, 글쓰기 몸쓰기 위크숍으로, 전시로, 다시 예술로, “무엇이 되지 않아도 되고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되는, 역할과 의무에서 벗어난 공간으로 기록되었다.

 

나도 익명의 비대면 방문자가 되어, 불안과 역할과 의무와 책임과 기대조차 내려 두고, 그곳에 발자국을 남기고 올 수 있었으면 좋았겠다. ‘이 책은 여정의 끝이 아니라 시작으로서 기획되었다고 하시니 어느 날의 조우를 꿈꿔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